아메리칸리그가 출범하고 첫 20년 동안 보스턴은 6번의 리그 우승과 함께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숫자가 하나 모자란 것은 1904년 내셔널리그 우승팀이었던 뉴욕 자이언츠가 경기를 거부해 월드시리즈 자체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80년 동안은 겨우 4번의 리그 우승에 그쳤다. 더 황당한 것은 4차례의 월드시리즈을 모두 7차전 끝에 패했다는 것. 사람들은 이를 두고 '밤비노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1901년 아메리칸리그의 창설멤버로 출발한 보스턴은 초기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1903년부터 Pilgrims로 불렸으며, 1907년부터는 지금의 이름인 Red Sox로 바뀌었다. 당시 보스턴에는 Boston Braves(現 Atlanta)라는 강팀이 버티고 있었지만 때마침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레드삭스는 간단히 보스턴의 야구팬들을 쓸어담을 수 있었다. 결국 브레이브스는 1953년 밀워키로 떠났다.
보스턴은 창단 3년째였던 1903년, 첫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Cy Young이 3년연속 다승왕을 따냈으며, Buck Freeman은 홈런과 타점에서 1위에 올랐다. 또한 그 해 창설된 월드시리즈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꺾고 명예로운 첫번째 우승팀이 됐다. 보스턴 글로브의 발행인 찰스 테일러의 아들인 John Taylor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전력은 한층 강화됐다. Taylor는 전폭적인 투자로 Smokey Joe Wood, '회색 독수리' Tris Speaker, Harry Hooper, Duffy Lewis 등을 발굴해냈다.
펜웨이파크가 개장한 1912년, 보스턴은 지금도 프랜차이즈 기록으로 남아있는 105승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John McGraw의 뉴욕 자이언츠를 꺾고 두번째 왕좌에 올랐다. 1915년 Babe Ruth가 합류하면서 최강의 마운드가 구축됐다. Wood, Ernie Shore, Rube Foster, Ruth의 4명은 아메리칸리그의 승률 1위부터 4위까지를 독식했다. 보스턴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월드시리즈도 1패 후 4연승으로 간단히 끝냈다.
그 해 겨울 보스턴은 뉴욕의 연극재벌 Harry Freige의 손으로 넘어갔다. 운명이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초기 Freige는 구단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좋은 구단주였다. 그러나 연극사업에서 입은 손해를 메우기 위해 1919년 Ruth를 뉴욕 양키스에 파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다. 단돈 12만5,000달러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포기한 것이다.
Ruth는 원래 투수였다. 첫 풀시즌이었던 1915년 18승을 올렸고, 이듬해에는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1회 1실점 후 나머지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 14회 연장전을 2-1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정규시즌에서는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Walter Johnson와의 연장 13회 맞대결을 1-0 완봉승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1918년 13승과 함께 11홈런으로 홈런 1위에 오른 Ruth는 이듬해 타자로 전업,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29개의 홈런을 날렸다. Ruth의 맹활약에 더불어 보스턴은 1916년과 1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Ruth의 이탈은 치명적이었다. 이후 보스턴은 1933년까지 14년동안 꼴찌만 8번을 차지하며 파멸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Ruth가 월드시리즈에서 '예고홈런'을 터뜨렸던 1932년에는 팀 최다패 기록인 111패를 당하기도 했다.
1933시즌이 끝나자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다. Tom Yawkey가 구단을 매입한 것.Yawkey는 사망하기 전까지 보스턴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야키는 구단을 사자마자 베테랑 Lefty Grove, Jimmie Foxx, Joe Cronin 등을 영입했다.
1938년과 42년 사이에 타격에는 Bobby Doerr, Ted Williams가, 마운드에서는Tex Hughson의 대형신인이 나타났다. 결국 1962년 보스턴은 27년만에 가장 좋은 성적인 .612의 승률로 리그 2위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1946년 Ted Williams 등 2차대전에 참전했던 선수들이 돌아오고 투수 Dave Ferriss와 1루수 Rudy York가 가세하면서 보스턴은 28년만에 아메리칸리그 정상에 올라섰다.
월드시리즈의 상대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양팀이 3-3으로 맞선 7차전 9회말의 세인트루이스의 공격. Harry Walker가 중전안타를 때리자 1루주자 Enos Slaughter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3루를 지나 홈까지! 그러나 아웃이 당연했던 상황에서 커트맨이었던 레드삭스의 유격수 Johnny Pesky는 공을 두번이나 더듬었고, Slaughter는 '광란의 질주'를 무사히 끝냈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48년에는 클리블랜드와 동률 1위를 이루고 가진 1게임 플레이오프를 패했으며, 그 이듬해에는 1경기만 이기면 우승할 수 있었던 마지막 더블헤더를 모두 패하며 좌절했다. 1950년에는 시즌 내내 1위를 달리다 막판 최악의 부진으로 3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맥이 빠져서일까. 보스턴은 이후 리그 4위권으로 밀려났고, 1959년부터는 아예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1966년 겨우 꼴찌를 면했던 보스턴은 이듬해 놀라운 투혼을 선보였다. 4팀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이겨내고 정규시즌의 마지막 날 극적인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Ted Williams로부터 좌익수를 물려받은 Carl Yastrzemski는 트리플크라운과 함께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월드시리즈 상대는 또다시 세인트루이스. 그러나 Bob Gibson이 버텼던 세인트루이스는 이번에도 7차전 패배라는 아픔을 선사했다.
이후 5년간 2~3위권을 유지하는 안정된 전력을 선보였던 보스턴은 Fred Lynn이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석권한 1975년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챔피언십에서 오클랜드를 물리치고 나간 월드시리즈. Carlton Fisk는 6차전 연장 12회말에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날렸지만, 월드시리즈 챔피언은 신시내티 레즈의 몫이었다. 그 해 겨울 톰 야키는 끝내 월드시리즈 우승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Roger Clemens가 '로켓 열풍'을 불러온 1986년 보스턴은 다시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꺾고 올라간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메츠를 만났다. 그러나 1986년의 월드시리즈는 '밤비노의 저주'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을 뿐이다. 레드삭스는 3승2패로 앞섰던 6차전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1루수 Bill Buckner가 '통한의 알까기'를 범하며 패했고, 결국 메츠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3번의 지구 우승(88년, 90년, 95년)과 2번의 와일드카드(99년, 2000년)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지만, 리그 우승과 월드시리즈 우승에는 모두 실패했다. 98년 현역 최고의 투수라는 Pedro Martinez의 영입과 2001년 8년간 1억 6천만$이라는 거액으로 데려온 타점머신 Manny Ramirez의 공격력으로 보스턴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팀 창단 100주년을 맞아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강한 열의까지 보였지만, Nomar Garciaparra는 손부상으로 시즌초부터 결장을 함으로써 팀전력 누수를 가져왔고, Pedro Martinez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를 지나면서 어깨에 고장이 생기고 말았다. 게다가 Carl Everett은 Jimmy Williams감독과 불화를 겪는 과정을 거쳤고, 결국 Williams 감독은 시즌도중 경질되었다.
2002년 시즌에 앞서 구단의 매각과 함께 마이너에서 잔뼈가 굵은 Grady Little를 새 감독으로 영입하였고, 팀에 잡음을 일으켰던 Everett를 트레이드 시킨 대신 FA중견수이자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중 한명이 Johnny Damon과 왕년의 스타 Rickey Henderson등을 영입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시즌 초반 주전 9명이 모두 3할을 기록하는등 뭔가 될 듯한 예감이 들었지만, 보스턴의 뚝심은 오래 가질 못했다. Derek Lowe ,Martinez 의 2명의 20승 투수와 화려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양키스에게 지구수위를 내줬고, 와일드 카드마저 잡지 못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
시즌도중 Ted Williams의 타계로 무르익었던 월드시리즈 우승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서 멀어져갔다. 보스턴의 팬들과 선수들은 월드시리즈 우승에 지칠대로 지쳤있으나,여전히 그들에게 '밤비노의 저주'와 양키스는 너무도 버거운 상대일 수밖에 없다. 2002 시즌후 Theo N. Epstein이라는 20대의 젊은 단장을 자리에 앉혀 발상의 전환(?)을 꾀하려고 하고 있으나, 마무리 Urbina가 빠져나간 자리를 집단 마무리 체제로 대신하려는 시도는 초반부터 삐꺽거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