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Branch Rickey의 마지막 도전은 제3의 메이저리그인 컨티넨탈리그의 창설이었다. 내셔널리그는 이를 막기 위해 1962년 뉴욕 메츠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리그 가입을 승인했다. 내셔널리그로서는 12개에서 8개로 줄었던 1900년 이후 처음으로 갖는 리그 확장이었다. 시작은 여느 신생팀들과 마찬가지였다. 20세기 최다패기록인 120패로 화려하게 데뷔한 메츠는 창단 이후 4년 연속 100패를 당하며 지구 꼴찌를 차지했다. 7년간 최하위 5번에 9위 2번.
하지만 인기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 1958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서부로 떠난후 응원할 팀이 사라졌던 뉴욕의 '양키헤이터(Yankee hater)'들은 메츠가 나타나자 열광적인 성원을 보냈다. 셰이 스타디움이 개장한 1965년, 메츠는 여전히 꼴찌를 차지했지만 관중동원수에서는 월드시리즈 챔피언 양키스를 능가했다. 메츠가 점차 강자의 보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8년 Gil Hodges가 감독에 취임하면서 부터. 73승으로 꼴찌 탈출에 성공한 메츠는 이듬해인 1969년 '미라클 메츠'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미라클 메츠'의 원동력은 방어율 2위를 차지한 마운드였다. 선발에서는 마치 현재의 오클랜드 3인방을 연상시키는 Tom Seaver(24)-Jerry Koosman(26)-Gary Gentry (22)의 영건 트리오가, 불펜에는 Ron Taylor-Tug McGraw-Nolan Ryan이 버티고 있었다. 5월부터 불이 붙기 시작한 메츠는 6월 단숨에 2위로 도약했고, 막판 질주로 시카고 컵스를 잡아냈다. 특히 Seaver는 마지막 10번의 선발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지구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Seaver는 25승7패 방어율 2.21로 메츠에 첫번째 사이영상을 선사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3연승을 거둔 메츠는 월드시리즈에서 당시 메이저리그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만났다. 특히 Mike Cuellar-Dave McNally-Jim Palmer의 선발진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메츠의 젊은 투수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1차전을 패한 메츠는 나머지 4경기에서 볼티모어 타선을 단 5점으로 막고 4승1패로 시리즈를 끝냈다.
메츠는 이후 강팀으로서의 전력은 유지했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며 3년 연속 지구 3위에 머물렀다. 1973년 내셔널리그의 동부지구는 6개팀중 5팀이 5경기차 안에 있었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레이스를 치렀다. 8월말까지 1위에 7경기 뒤진 최하위였던 메츠는 막판의 7연승 등 후반기 대약진으로 두번째 기적을 이뤄냈다. 메츠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빅레드머신' 신시내티 레즈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고 월드시리즈에 나섰다. 하지만 '다이너스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넘는데는 실패했다. Vida Blue-Ken Holtzman -Catfish Hunter-Rollie Fingers의 막강 마운드를 자랑했던 오클랜드는 이후 1974년까지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1974년부터 메츠는 오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1977년에는 Seaver가 신시내티로 떠났으며, 그 이듬해에는 Koosman이 미네소타 트윈스로 향했다. 1980년 Nelson Doubleday와 Fred Wilson이 구단을 매입하면서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더블데이와 윌펀은 팀 재건을 위한 전폭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1983년 Darryl Strawberry와 Ron Darling이 데뷔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Keith Hernandez를 데려왔다. 이듬해에는 Davey Johnson이 지휘봉을 잡았으며, 거물 Dwight Gooden이 출현했다. 198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포수 Gary Carter를 영입한 메츠는 86시즌에 앞서 Bob Ojeda까지 데려오면서 막강 전력을 구축했다. 1984-85년 연속 2위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메츠는 마침내 1986년 폭발했다.
Ojeda-Darling-Gooden은 방어율에서 리그 2,3,5위에 올랐으며 불펜의 Roger McDowell과 Jesse Orosco는 43세이브를 합작했다. Carter-Strawberry-Hernandez의 파워도 가공할만 했다. 결국 메츠는 지금도 프랜차이스 최다승으로 남아있는 108승을 거두며 2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21.5경기 앞선 여유있는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휴스턴를 꺾고 올라간 월드시리즈에서 메츠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1루수 Bill Buckner에게 통한의 실책을 선물한 '밤비노의 저주'에 힘입어 7차전 끝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메츠는 Ojeda의 부상 이탈과 달링의 부진 속에서도 세인트루이스에 3경기 뒤진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1988년 20승을 따낸 David Cone의 돌풍 속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15경기 차로 누르고 다시 지구 우승을 따냈다. 하지만 메츠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Orel Hershiser를 앞세운 다저스에게 예상밖의 패배를 당했다.
1989년의 2위 이후 메츠는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성기가 지난 Carter와 Hernandez가 방출됐으며, Strawberry는 다저스로 이적했다. Johnson 감독도 90시즌 중반에 해임됐다. 1993년 103패를 당하며 바닥을 친 메츠는 1995년 2위, 96년 4위로 점차 전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큰 기대를 걸었던 '영건 트리오' Bill Pulsipher-Jason Isringhausen(現 세인트루이스)-Paul Wilson(現 신시내티)의 몰락은 너무도 아팠다.
96시즌 중반 일본프로야구 롯데 마린스에서 복귀한 Bobby Valentine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메츠는 투수력에 바탕을 둔 세밀한 야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1998년 시즌 중반 Mike Piazza를 영입하는데 성공한 메츠는 시즌 막판까지 여유있는 와일드카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메츠는 막판에 믿을 수 없는 5연패를 당하며 결국 샌프란시코와 컵스의 승자에게 와일드카드를 넘겨주고 말았다. 메츠의 뒷심 부족은 이듬해 재현됐다.
메츠는 마지막 9경기에서 1승8패의 부진으로 신시내티 레즈에 동률을 허용했다. 하지만, Al Leiter는 플레이오프 단판승부에서 2안타 완봉승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메츠는 디비전시리즈에서 Randy Johnson이 버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꺾었지만,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다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0시즌 와일드카드 획득에 성공한 메츠는 샌프란시스코와 세인트루이스를 연파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 양키스를 만났다. 44년만에 이뤄진 지하철시리즈였다. 하지만 3연패에 도전하는 양키스의 전력은 한수 위였다. 지난해 최악의 공격력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메츠는 올시즌에 앞서 Mo Vaughn, Roberto Alomar, Roger Cedeno, Jeromy Burnitz 등의 강타자들을 쓸어담으며 애틀랜타의 10년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더욱 처참한 결과를 맞고 말았다. 결국, 명장으로 대접받던 Bobby Valetine 감독은 경질되었고, 오클랜드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이끈 Art Howe를 감독의 영입과 Tom Glavine이라는 걸출한 에이스를 데리고 오면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인기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 1958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서부로 떠난후 응원할 팀이 사라졌던 뉴욕의 '양키헤이터(Yankee hater)'들은 메츠가 나타나자 열광적인 성원을 보냈다. 셰이 스타디움이 개장한 1965년, 메츠는 여전히 꼴찌를 차지했지만 관중동원수에서는 월드시리즈 챔피언 양키스를 능가했다. 메츠가 점차 강자의 보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8년 Gil Hodges가 감독에 취임하면서 부터. 73승으로 꼴찌 탈출에 성공한 메츠는 이듬해인 1969년 '미라클 메츠'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미라클 메츠'의 원동력은 방어율 2위를 차지한 마운드였다. 선발에서는 마치 현재의 오클랜드 3인방을 연상시키는 Tom Seaver(24)-Jerry Koosman(26)-Gary Gentry (22)의 영건 트리오가, 불펜에는 Ron Taylor-Tug McGraw-Nolan Ryan이 버티고 있었다. 5월부터 불이 붙기 시작한 메츠는 6월 단숨에 2위로 도약했고, 막판 질주로 시카고 컵스를 잡아냈다. 특히 Seaver는 마지막 10번의 선발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지구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Seaver는 25승7패 방어율 2.21로 메츠에 첫번째 사이영상을 선사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3연승을 거둔 메츠는 월드시리즈에서 당시 메이저리그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만났다. 특히 Mike Cuellar-Dave McNally-Jim Palmer의 선발진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메츠의 젊은 투수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1차전을 패한 메츠는 나머지 4경기에서 볼티모어 타선을 단 5점으로 막고 4승1패로 시리즈를 끝냈다.
메츠는 이후 강팀으로서의 전력은 유지했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며 3년 연속 지구 3위에 머물렀다. 1973년 내셔널리그의 동부지구는 6개팀중 5팀이 5경기차 안에 있었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레이스를 치렀다. 8월말까지 1위에 7경기 뒤진 최하위였던 메츠는 막판의 7연승 등 후반기 대약진으로 두번째 기적을 이뤄냈다. 메츠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빅레드머신' 신시내티 레즈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고 월드시리즈에 나섰다. 하지만 '다이너스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넘는데는 실패했다. Vida Blue-Ken Holtzman -Catfish Hunter-Rollie Fingers의 막강 마운드를 자랑했던 오클랜드는 이후 1974년까지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1974년부터 메츠는 오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1977년에는 Seaver가 신시내티로 떠났으며, 그 이듬해에는 Koosman이 미네소타 트윈스로 향했다. 1980년 Nelson Doubleday와 Fred Wilson이 구단을 매입하면서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더블데이와 윌펀은 팀 재건을 위한 전폭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1983년 Darryl Strawberry와 Ron Darling이 데뷔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Keith Hernandez를 데려왔다. 이듬해에는 Davey Johnson이 지휘봉을 잡았으며, 거물 Dwight Gooden이 출현했다. 198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포수 Gary Carter를 영입한 메츠는 86시즌에 앞서 Bob Ojeda까지 데려오면서 막강 전력을 구축했다. 1984-85년 연속 2위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메츠는 마침내 1986년 폭발했다.
Ojeda-Darling-Gooden은 방어율에서 리그 2,3,5위에 올랐으며 불펜의 Roger McDowell과 Jesse Orosco는 43세이브를 합작했다. Carter-Strawberry-Hernandez의 파워도 가공할만 했다. 결국 메츠는 지금도 프랜차이스 최다승으로 남아있는 108승을 거두며 2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21.5경기 앞선 여유있는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휴스턴를 꺾고 올라간 월드시리즈에서 메츠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1루수 Bill Buckner에게 통한의 실책을 선물한 '밤비노의 저주'에 힘입어 7차전 끝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메츠는 Ojeda의 부상 이탈과 달링의 부진 속에서도 세인트루이스에 3경기 뒤진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1988년 20승을 따낸 David Cone의 돌풍 속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15경기 차로 누르고 다시 지구 우승을 따냈다. 하지만 메츠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Orel Hershiser를 앞세운 다저스에게 예상밖의 패배를 당했다.
1989년의 2위 이후 메츠는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성기가 지난 Carter와 Hernandez가 방출됐으며, Strawberry는 다저스로 이적했다. Johnson 감독도 90시즌 중반에 해임됐다. 1993년 103패를 당하며 바닥을 친 메츠는 1995년 2위, 96년 4위로 점차 전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큰 기대를 걸었던 '영건 트리오' Bill Pulsipher-Jason Isringhausen(現 세인트루이스)-Paul Wilson(現 신시내티)의 몰락은 너무도 아팠다.
96시즌 중반 일본프로야구 롯데 마린스에서 복귀한 Bobby Valentine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메츠는 투수력에 바탕을 둔 세밀한 야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1998년 시즌 중반 Mike Piazza를 영입하는데 성공한 메츠는 시즌 막판까지 여유있는 와일드카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메츠는 막판에 믿을 수 없는 5연패를 당하며 결국 샌프란시코와 컵스의 승자에게 와일드카드를 넘겨주고 말았다. 메츠의 뒷심 부족은 이듬해 재현됐다.
메츠는 마지막 9경기에서 1승8패의 부진으로 신시내티 레즈에 동률을 허용했다. 하지만, Al Leiter는 플레이오프 단판승부에서 2안타 완봉승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메츠는 디비전시리즈에서 Randy Johnson이 버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꺾었지만,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다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0시즌 와일드카드 획득에 성공한 메츠는 샌프란시스코와 세인트루이스를 연파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 양키스를 만났다. 44년만에 이뤄진 지하철시리즈였다. 하지만 3연패에 도전하는 양키스의 전력은 한수 위였다. 지난해 최악의 공격력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메츠는 올시즌에 앞서 Mo Vaughn, Roberto Alomar, Roger Cedeno, Jeromy Burnitz 등의 강타자들을 쓸어담으며 애틀랜타의 10년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더욱 처참한 결과를 맞고 말았다. 결국, 명장으로 대접받던 Bobby Valetine 감독은 경질되었고, 오클랜드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이끈 Art Howe를 감독의 영입과 Tom Glavine이라는 걸출한 에이스를 데리고 오면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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