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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도 펼쳐 보고 미국 여행 하자.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지도 검색 블로그)
by 미국 여행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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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선진자유무역경제를 표방하는 미국은 국민총생산(GNP)에 있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며 1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에 속한다. 미국의 부는 부분적으로 풍부한 천연자원에 힘입고 있다. 인구는 전세계의 5% 수준이지만 석탄·구리·원유 생산량은 전세계의 거의 1/5을 차지한다. 농업 부문을 보면, 옥수수는 세계 총생산량의 1/2, 쇠고기·돼지고기·양고기는 1/5, 밀은 1/1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천연자원이나 농업생산물보다는 고도로 발달된 공업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비교적 자급자족이 가능한데도 경제규모가 크다는 것만으로도 세계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수출액은 전세계 총량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은 무역 강대국으로서뿐만 아니라 투자자본의 원천으로서 세계 경제에 침투하고 있다. 미국 기업에 의한 해외 직접투자는 캐나다와 라틴아메리카 제국가에서 경제를 좌우하는 요인이 되며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물자원

광업과 채석업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고도로 기계화되어 있다. 주요유전(油田)은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멕시코 만,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 등지에 있다. 천연 가스의 주요매장지도 동일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발굴 가능한 석탄매장지는 주로 애팔래치아 산맥과 와이오밍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에서 추출되고 가공되는 금속들 가운데 철광석·구리·보크사이트·납·아연·몰리브덴·수은·텅스텐·티탄광·은 등이 가장 중요하다. 인회암·칼륨·석염·석회석·석고·석회·이회토(泥灰土)·부석(浮石)·붕소·활석 등도 발굴된다. 미국은 운모(雲母)·중정석(重晶石)·황·장석(長石) 생산에 있어 세계적인 생산국에 속한다.

에너지

미국 전기 에너지의 약 3/4이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며 나머지는 핵발전소와 수력발전소가 충당한다. 수력자원은 태평양지역과 산맥지역에 거의 집중되어 있는데, 두 지역에서 미국 수력발전소 발전 용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알래스카는 미국 수력발전 잠재용량의 거의 1/5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남동부의 테네시 강 유역에는 거대한 수력발전 시설이 들어서 있다.

농업·임업·어업

미국의 전체 토지면적 중에서 약 절반가량이 농경지(목초지와 방목지 포함)로 이용된다. 농업생산성이 급속하게 향상되어 적은 노동력으로 전례없이 많은 생산이 가능해졌다. 농업인력은 감소한 반면 농지의 소유집중화와 기계화는 증가했다. 주요농작물은 미국의 중심부에서 자라는 옥수수·밀·보리 등과 주로 남부에서 재배되는 알곡용 수수·목화쌀·쌀·콩·담배 등이다.

과일로는 플로리다·텍사스·캘리포니아 등지의 오렌지·그레이프프루트·레몬·라임, 태평양 연안의 포도, 그리고 하와이의 파인애플, 북쪽의 선선한 지대에서 생산되는 사과·버찌 등이 있다. 생산된 대부분의 환금작물은 실질적으로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기 때문에 외국으로 수출되며 미국은 주요 식량수출국이기도 하다. 주로 남서부와 서부에 있는 경작지의 약 1/10이 관개시설을 갖추고 있다. 생산량은 상업용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등의 사용증가와 더불어 매년 향상되어왔다.

미국의 주요가축은 소·돼지·말·양 등이다. 낙농업은 특히 어퍼미드웨스트와 뉴잉글랜드에서 발달되어 있는데, 우유·치즈·버터의 생산은 국내수요를 충당하고 남아 해외에 수출하거나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저장한다. 소가죽과 양모의 생산은 피혁 및 섬유 산업의 기초가 된다. 소와 양떼는 지금도 사우스웨스트와 로키 산맥 주변에 있는 주들의 주요자산이다. 식용사육조류 산업은 남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엄청난 면적의 미국 삼림지 가운데 2/3가 경제적으로 이용되는 삼림지역으로, 주기적으로 벌목되고 다시 녹화된다. 삼림이 가장 많은 지역은 알래스카를 포함한 서부이지만 남부와 북부에도 대규모 삼림이 있다. 미국은 세계적인 주요목재생산국이다. 미국은 세계의 주요어업국에 속하며, 어업선단은 대서양, 태평양, 북극해, 카리브 해, 멕시코 만 등지에서 조업한다.

제조업

제조업 생산량은 대략 경제 전반과 동일한 비율로 성장해왔다. 수년 동안 생산성이 증가했는데 부분적으로 자본투자의 수준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주요생산품은 알루미늄·강철·철금속·제조상품·시멘트·건축자재 등이다. 그밖에 기계류, 자동차, 기타 수송장비·부품, 전기·전자 제품, 가공식품, 담배, 화학제품, 섬유·의류, 고무·플라스틱 등도 주요생산품이다. 1970~80년대에 제조업은 내구소비재 분야에서 전자·컴퓨터·소프트웨어로 업종 변경을 시작했는데, 기존의 산업은 낡은 설비와 장비, 낮은 생산성, 비교적 높은 임금으로 인해 외국 제품과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서비스 산업

미국 경제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종목은 서비스 산업으로, 1996년 현재 노동인력의 약 1/3이 여기에 종사하며, 국내총생산 공헌도에 있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의료·보건업, 전문업, 사회사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호텔·리조트·휴양시설의 설립과 함께 최근 시작된 레저 산업도 서비스 분야에 속한다.

플로리다, 남캘리포니아, 하와이 등의 경관이 수려한 해변과 낚시터가 있는 아열대지역은 관광업의 중심지이다. 그밖에 로키 산맥과 시에라네바다 산맥, 뉴잉글랜드 지역의 겨울 스포츠 리조트도 관광명소로 꼽힌다. 대규모 메트로폴리스 지역도 박물관과 문화행사 등을 통해 관광객의 관심을 끈다. 동부 연안주의 역사 유적지, 서부의 불가사의한 자연경관과 국립공원, 캐나다-미국 국경의 나이애가라 폭포 등도 국내 및 외국 관광객을 매료시키는 주요관광명소이다.

노동

미국에서 16세 이상 인구의 약 2/3가 노동인구이다. 20세기말에 오면서 실업과 불완전 고용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고임금 제조업에서 다양한 서비스업 분야의 저임금 업태로 옮아가면서 문제가 더 악화되었다. 노동조합은 잘 발달되어 있으나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미국노동총연맹 산업별노동조합회의(AFL-CIO)가 주요연맹이며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여기에 가입해 있다.

정부의 역할

정부는 경제 생산에서 작은 역할만을 직접적으로 수행할 뿐이다. 정부가 규제하는 주된 영역은 재정과 통화 정책이다. 정부는 또한 재화의 구매자로서 특정 부문에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한다. 또 다른 정부의 주된 역할은 독점금지법 집행을 통해 시장경쟁을 조장하는 것이다.

정부는 조세징수, 소득세 면제, 조세 할인, 지원금 지급, 소득공제 등의 정책을 통해 경제활동의 상태를 조절한다. 이자율은 정치적 독립기관인 연방준비은행(FRB)의 통제를 받는다. 상업부와 여러 조정기관은 공개경쟁을 보장하며, 법무부는 무역규제를 개선하는 법률을 시행한다. 국가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사업인 경우, 기업들은 주로 에너지와 국방관련 부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미국과학부흥재단(NSF) 등을 통해 연구개발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연방세입은 주로 개인소득세·사회보장세·법인소득세·소비세 등을 통해 충당된다. 지출은 주로 사회보장·메디케어(Medicare :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국방·소득보장·국채이자·보건 등에 쓰인다.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는 통화정책을 조정한다. 1960년 이후 줄곧 연방정부는 고성능 무기체제의 개발을 위한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사회·복지 사업의 급속한 확장으로 인해 심각한 예산적자를 겪는 재정상태가 되었고, 주기적인 경기침체로 더욱 악화되었다. 그결과 국채는 계속 증가했다.

교통

복잡한 경제·사회 생활은 미국 사회가 가진 특별한 유동성을 반영한다. 그물처럼 고루 퍼진 수송망은, 국토의 면적이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동질적이며 밀접한 사회·경제 환경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 경제의 활력은 이와 같은 기동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동성은 메트로폴리스의 거대화, 교외지역의 확산, 정기 출퇴근 지역 반경의 광역화, 상업 및 공업의 분산, 비농경 시골 거주민(강력한 중심지가 없는 새로운 종류의 도시화지역에 사는 사람)의 증가 등을 위한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구도시지역의 슬럼화가 가속되고, 교통체증이 심화되고, 환경오염이 악화되고, 공공교통체계를 약화시키는 등 부작용도 낳았다.

미국 교통망 가운데 최대 장관은 전장 7만 800km에 달하는 주간고속도로망(州間高速道路網)일 것이다. 주간고속도로망은 전국 50개주에 걸쳐 인구 5만 명 정도의 도시 가운데 90%를 연결하는 다선체계의 전국적 교통망이다. 1950년대에 생긴 이 교통망은 현재 미국 자동차 교통량의 1/5을 담당하고 있으며, 교통신호등에 의한 정지없이 동부 끝에서 서부 끝까지의 자동차 여행이 가능하다. 이 도로망은 동부연안지역과 서부해안지역, 미시시피 강과 오하이오 강 유역을 따라 아주 조밀하게 퍼져 있다.

미국의 가정 가운데 90%가 적어도 1대의 자동차나 트럭을 소유하고 있으며 2대 이상 소유한 가정도 많다. 대도시권간의 여행은 대부분 자동차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인구과밀 도시에서는 공공교통수단과 정기통근열차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뉴욕·시카고·필라델피아·보스턴과 같이 거대한 중심도시들에서는 러시 아워 때의 출퇴근 승객 대부분이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그렇지만 도시 공공교통체계는 대부분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으며, 일부 도시지역의 인구가 증가했는데도 버스와 지하철의 이용률은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한때 철도가 화물운송과 여객수송을 독점하다시피 한 적도 있었지만, 정부의 통제와 트럭 운송업계의 경쟁력이 높아져 운송에서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현재 철도는 미국의 대도시간 화물운송의 약 1/3을 맡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운송품목은 석탄·곡물·화학약품·차량 등이다. 1970년경 다수의 철도회사가 여객업무를 포기했는데 당시 미국 의회는 여객 업무를 전담할 '미국철도여객공사'(Amtrak)를 창설했다.

앰트랙은 전국적으로 3만 8,400km에 걸쳐 뻗어 있으며 500여 개의 정거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방대한 가항 수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내륙지역의 미시시피 강 수계, 오대호-세인트로렌스 수계(북부), 그리고 멕시코 만을 따라 있는 만 연안 수로 등이 중심을 이룬다. 너벅선이 국내 수로운송의 2/3 이상을 맡고 있다. 운송되는 주요품목은 석유제품·석탄·코크스·곡식 등이다.

선박 적재량에서 가장 큰 항구는 뉴욕 주의 뉴욕시티,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 알래스카 주의 밸디즈, 텍사스 주의 휴스턴 등이다. 항공운송도 잘 개발되어 있어 거의 500개의 공항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다. 애틀랜타와 시카고 지역 간 연결 공항은 세계의 상업용 공항 가운데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무역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초까지 상품 무역수지는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했다. 주요수출품목은 화학제품과 그 관련상품, 자동차와 그 부품, 사무기기와 컴퓨터, 항공기와 그 부품, 곡물, 그리고 일반적인 공업용기계 및 전기기계 등이다. 주요수출국은 캐나다·일본·멕시코·영국·독일 등이다. 주요수입품목은 자동차와 그 부품, 원유 및 정유 제품, 철과 강철의 기초제품, 원자재(연료와 식량 포함) 등이다. 주요수입국은 캐나다·일본·멕시코·독일 등이다.

정치·사회

정부의 구조


미국은 하나의 연방정부와 50개의 주정부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다 (→ 색인 : 연방제도). 1789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은 일부 선택적인 권력만 연방정부에 위임하고 나머지는 주정부의 권한으로 유보시켜놓았다. 국방·외교정책·대외무역의 조정기능, 통화(通貨), 최고 법 집행기능, 주간통상(州間通商)의 조정기능, 이민 등은 연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임권에 속한다. 주정부의 주요기능은 교육, 농업, 자연보호, 고속도로 관리, 차량 감독, 공공안녕, 교도행정, 주내 통상의 조정, 교육·보건·복지 정책의 시행 등이다.

헌법은 연방정부의 권력을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등 동등한 자격의 3부로 분립시켜놓았다. 각 주도 연방정부와 매우 비슷한 정부구조를 갖고 있다. 최고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지는데 대통령은 50개주와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가원수, 군의 최고사령관, 조약체결권자로서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행정수반으로서 입법의 제안, 대외정책의 입안 등의 권한을 가진다.

입법권은 435명의 하원과 100명의 상원에 부여되어 있다 (→ 색인 : 미국의회). 각 주는 6년 임기의 상원의원 2명을 선출한다. 하원의원은 일반투표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2년이다. 하원의 의원수는 각 주마다 10년 단위의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파악되는 인구에 비례해 할당된다. 사법부는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9명의 법관으로 이루어진 대법원(Supreme Court)이 이끈다. 대법원은 재심의권을 사용해 헌법에 위배되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법안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하급 법원의 판결을 다루는 최종 상소심 법원이기도 하다 (→ 색인 : 사법부).

중도좌파 성향인 민주당과 중도우파 성향인 공화당 등 두 정당이 선거정치의 중심을 이룬다. 각 정당은 폭 넓은 유권자층의 지지와 정치적으로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을 모색하므로 양 정당은 일반적으로 중도적인 정책을 표방한다. 양 정당의 유권자층은 비교적 독립적인 유권자층으로 서로 중복된다.

군사

미국의 군대는 육군·해군(해병대 포함)·공군으로 구성되며, 버지니아 주 알링턴 군에 있는 펜타곤(Pentagon) 건물에 본부를 둔 국방부의 지휘를 받는다. 군대와 유사한 단체인 연안경비대(Coast Guard)는 운수부의 지휘를 받는다. 징병제도는 1973년 폐지되고 그뒤부터 모병제에 의한 지원병으로 군을 구성하고 있다. 그밖에 미군은 전시에 소집될 수 있는 예비군을 유지하고 있다. 또 각 주는 주지사의 요청에 의해 언제라도 소집할 수 있는 예비군으로 편성된 주방위군(National Guard)을 보유한다.

군 예산의 상당부분이 재료 및 연구개발비에 소비되기 때문에 군사계획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또한 군의 영향은 상호방위와 군사지원을 위한 다자간·양자간 조약을 통해 다른 국가에까지 미친다. 미국은 아프리카·아시아·유럽·라틴아메리카 등지에 군사기지를 갖고 있다. 1947년에 제정된 '국가안전보장법'은 안보와 정보수집 활동을 위한 일원화된 지휘권을 창출했다. 이 법안에 따라 '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 중앙정보국'(CIA)이 창설되었다. CIA는 NSC의 감독하에 대외정보수집업무를 전담한다. 국방부 산하기관인 국가안전보장국(NSA)은 암호해독과 통신정보업무를 담당한다.

사회복지

사회복지를 위한 재정 및 행정 지원은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예산은 실업수당·산업재해·질병·모자보건·노인문제·장애인·이혼녀 등을 위해 사용된다. 나아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함께 부양아동이 있는 결손가정에 현금을 제공하거나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한다. 국가적으로는 막강한 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은 많은 미국인(인구의 1/10 이상)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빈민의 약 절반은 가장(家長)이 정규 혹은 비정규 임금 근로자인 가정 출신이다.

그밖에도 상당수 인구가 너무 늙어 일을 할 수 없거나 무능력자이며, 가장의 상당비율은 어린 자녀를 거느린 여성이다. 주정부는 빈민에게 각 주 나름대로의 금전적 지원을 한다. 미국 농무부는 주정부와 지역 정부를 통해 빈민에게 저렴한 가격의 식량과 식품권을 분배한다. 피고용인은 1930년대에 창설된 연방 사회보장법에 의거해 퇴직연금을 수령할 자격이 주어진다. 또한 고용주들도 건강보험과 생명보험은 물론이고, 노사간의 분배원칙에 입각해 별도의 퇴직수당을 지급한다. 그밖에도 많은 미국인들이 민간자선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보건

의료 보건사업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업 중의 하나이다. 보건과 위생 조건은 일부 시골과 도시의 빈민밀집지역을 제외하면 높은 수준에 속한다. 미국의 주요보건문제 가운데 하나였던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은 1960년대말 이래 꾸준히 감소해오고 있다. 더욱이 인구수에 비해 의사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렇지만 흑인의 보건지표는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흑인 영아의 사망률은 백인 영아보다 거의 2배나 높다.

주택

미국에서 전체 주택의 약 2/3가 단독세대 주택이다. 자갈이나 벽돌로 겉을 덮지만 대부분의 주택은 목조건축물이다. 주택문제는 보건문제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공공사업이라기보다는 민간사업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렇지만 도시빈민가의 급증으로 여러 시정 당국이 보다 엄격한 건축법과 위생단속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34년 저렴한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건설업체에게 융자를 제공하기 위해 '연방주택국'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저렴한 주택을 건설해 대도시의 빈민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종종 부동산 소유자의 저항에 부딪혔다. 주택사업에 있어 인종 및 민족의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주와 시당국은 '공정주택법'을 채택했고 공정주택위원회도 구성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도 소수민족과 빈민이 게토를 형성해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는 크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법의 집행

미국의 치안업무는 전통적으로 지역 경찰관리에게 집중되어 있다. 치안업무의 대부분이 도시지역에서는 경찰관과 형사에 의해, 시골에서는 보안관과 치안경관에 의해 집행된다. 다수의 주정부가 법집행기관을 두고 있고, 모든 주정부가 교통법규의 집행을 위한 고속도로 순찰대를 보유하고 있다. 연방관할구역에서 생긴 범죄행위(예를 들어 1개주 이상에서 저질러진 범죄)는 연방수사국(FBI)이 맡는다. FBI는 또한 지문감식과 기술적 실험을 통해서 주·지역 치안당국에 협조한다. 그밖에도 법무부 산하의 마약방지관리국, 재무부 산하의 주류·담배·무기 관리국과 같은 연방 산하기관은 특정한 연방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교육

지역·주·연방 간의 계획 및 정책의 협조체제는 교육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역사적으로 교육은 주와 지역정부의 소관사업으로 간주되었다. 3,000개 이상의 대학과 종합대학교 중에서 군사학 분야의 일부 학교만이 연방기관에 속한다. 그러나 1862년 연방정부가 농과대학과 공과대학을 설립할 목적으로 주정부에 연방공유지를 불하(이런 대학은 '토지불하대학'으로 불림)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모든 차원에서 교육에 관여해왔다. 그밖에도 학교급식계획을 지원하고, 아메리카 인디언 교육을 관할하며, 대학에 연구비를 지급하고, 대학생에게 학자금을 융자해주며, 퇴역군인 교육의 재정을 지원한다.

초등교육은 여전히 일차적으로 지역정부의 소관이지만,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64년의 민권법은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학군에 대해 연방정부가 재정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 색인 : 민권법). 학교가 많은데도 인종차별지역에 사는 흑인들의 자녀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부분의 주에서 6세에서 16세까지 무상·의무 교육을 실시한다. 미국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중등교육을 마치는 17, 18세까지 학교에 다닌다. 미국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등교육기관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명문 대학교로는 하버드대학교(매사추세츠)·예일대학교(코네티컷)·프린스턴대학교(뉴저지)·시카고대학교(일리노이)·스탠퍼드대학교(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등이 있다.

정부와 보도기관

미국에서 보도매체의 힘은 막강하며 도처에 존재한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연방 차원과 주 차원에서 모두 포함됨)는 미국의 언론기관에 정부 행동을 감시할 수 있는 무한정의 자유를 제공한다. 공무상 기밀 법안도 언론이 정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수행하는 데 제약을 가할 수 없다. 베트남 전쟁에서 보도매체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다양한 민중선동가와 기타 정치인들의 부침(浮沈)을 자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워터게이트 사건이 보도되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곧 탄핵에 직면하게 되어 사임(1974)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

예술


오늘날의 미국을 이룬 개척민들은 영국·네덜란드·독일·프랑스·스페인 등 떠나온 조국의 언어와 일반적인 문화관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신세계의 요구와 그 세계가 제공하는 기회로 인해 신속하게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중엽부터 미국의 건축·미술·문학·음악 등에 대한 구세계(유럽)의 영향력은 느슨해졌다. 유럽의 문화양식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부활되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존속되었으나,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고유한 경험을 토대로 독특한 미국적 특징을 만들어내고 영감을 불어넣은 것은 일반대중이었다.

건축분야의 경우, 스칸디나비아에서 전해진 통나무집은 신속하게 보급되어 숲이 우거진 프런티어 지역의 상징적인 주택이 되었다. 연방양식, 그리스 부흥양식, 고딕 복고양식 등 보다 정교한 건축양식이 19세기에 도시와 시골의 건축물에 이용되었다. 도시들이 소위 황금시대(Golden Age)로 접어들면서 마천루가 등장해 미국 사회의 기술적 업적과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윌리엄 러 배런 제니와 루이스 설리번은 시카고 출신의 건축가로, 그러한 건축양식의 선구자들이다. 설리번의 제자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9~1959)는 프레리 학파(Prairie School)로 알려진 새로운 건축설계운동을 시작해 20세기초에 미국 전역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후대의 주요 미국건축가로는 독일 태생의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르 로어, 그의 제자들인 필립 존슨, 로버트 벤투리 등이 있다.

웅장한 자연과 풍요한 원자재는 미국의 시각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825~70년에 유행했으며 황야 그 자체를 소재로 삼았던 허드슨 강파(Hudson River School)는 미국 미술에서 일어난 최초의 토착화 운동으로 여겨진다. 아셔 B. 듀랜드가 그 대표적인 화가이다. 도시생활은 에드워드 호퍼 같은 사실주의파나 스튜어트 데이비스 같은 추상파 화가를 막론하고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20세기 중엽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로 알려진 미국의 회화양식이 결과적으로 서양미술을 압도하게 되었다. 중심인물은 잭슨 폴럭과 로버트 머더웰 등이었다. 추상표현주의의 위세도 1960년대에 또다른 미국적 양식인 팝 아트(Pop Art)의 등장으로 쇠퇴했다. 앤디 워홀과 로버트 라우셴버그 등의 팝 아티스트들은 대중문화와 상업에서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했다.

종종 조각의 발전은 회화의 발전과 병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루이즈 니벌슨과 마크 디 주베로의 추상화와 클래스 올덴버그의 팝 아트 조각이 바로 그 예이다. 다양한 양식과 경향과는 대조를 이루는 특이한 예술가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미국 예술의 현저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고립상태에서 제작된 그들의 작품들은 국가적 경험에서 발견된 본질적인 것을 표현한다. 19세기의 윈즐로 호머와 20세기의 조지아 오키페 등의 화가들이 그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미술).

20세기 전반기 동안 미국의 뛰어난 사진작가들은 대체로 사진술을 순수예술의 하나로 보려고 했고, 순간의 기록물로서 도처의 일반적 장면을 담는 것이 아니라 옛 미술전통에 접목시킴으로써 순수예술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부 천재적인 사진작가들은 대중매체 영상과 미학적 피사체(즉 예술과 사진술) 사이의 간격을 초월할 수 있었으며 단순하고 시사적인 순간을 포착해 완벽하고 영구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워커 에번스와 로버트 프랑크(전후세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이주민이었음)는 사진술을 전통적인 조형예술처럼 계산되고 고려된 것으로 만들지 않고 카메라의 순간영상에서 개성과 영속성이 있는 것을 찾았다. 미국 여행 기록물로 프랑크가 펴낸 〈미국인들 The Americans〉(1959)은 이러한 시각으로 만들어낸 걸작이며, 전후시대의 시각표현 분야에서 〈미국인들〉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없었다.

로버트 매플소프, 다이언 아버스, 리처드 애브던과 어빙 펜 등은 거의 반 세기 동안 패션 사진과 인물사진을 주도했는데 박물관과 잡지 사이, 즉 예술성있는 초상화와 저급한 상업사진 사이를 넘나든 사진작가였다. 이들 사진작가들은 모두 영광과 침체, 상업적 작품과 독창적인 작품 사이를 오가면서, 미국 예술가들이 직면한 경제적 곤경과 내재하고 있는 잠재적 능력의 전형을 보여주게 되었다.

역사를 통틀어 미국은 일단의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했다. 코튼 매더와 조내선 에드워즈의 설교집에서부터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의 불후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시대와 건국 초기시대가 미국 문학 속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문학은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슨,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등과 같은 작가들로 대변되었다.

20세기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벡, H. L. 멘켄, F. 스콧 피츠제럴드, 노먼 메일러, 솔 벨로, 존 업다이크 등의 작가들이 이름을 떨쳤다. 희곡 작가로는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시인으로는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로버트 프로스트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흑인 문학으로는 랠프 엘리슨의 〈투명인간 Invisible Man〉(1952)이 20세기 미국 소설 가운데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보다 최근에는 여성운동이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서 토니 모리슨, 앤 타일러, 루이즈 에드리히 등의 작품이 애독되었으며 여성소설의 급속한 팽창을 경험했다(→ 미국문학).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이 큰 예술 분야는 영화였다. 하워드 헉스, 조지 쿠커, 오손 웰스, 프랭크 캐프라, 존 포드, 존 휴스턴 등과 같은 미국의 영화제작자들은 영화예술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유럽의 학구적 관심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로버트 앨트먼 등 차세대 미국 영화제작자들을 고무시켜 사실적 표현의 수단으로 상업적 영화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했다. 또 20세기에 미국에서 발명된 텔레비전도 때로 영화예술 수준으로 고양되기도 했지만 주로 대중오락과 정보전달의 매체로 머물러 있다(→ 영화).

미국은 독특한 형태의 대중음악을 발전시켰다. 재즈·블루스·컨트리앤드웨스턴·로큰롤 등의 각 음악형태는 미국 생활을 통해 갖게 되는 공통의 리듬과 관심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연주자들로는 재즈의 듀크 엘링턴, 블루스의 앨버트 킹, 컨트리앤드웨스턴의 행크 윌리엄스, 로큰롤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중문화에 기여한 미국의 또다른 분야는 스테이지 뮤지컬(stage musical)이다.

극예술과 노래를 혼합한 형태인 뮤지컬은 제롬 컨,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리처드 로저스, 조지 거슈윈, 레너드 번스타인, 스티븐 손드하임 등의 작곡가 및 서정시인들의 작품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현대의 고전음악분야에서는 찰스 아이브스, 존 케이지, 엘리엇 카터와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을 배출했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관현악단이다(→ 음악).

고전무용은 20세기 중엽 이후까지 미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뛰어난 미국의 무용가였던 이사도라 덩컨은 금세기의 전환기를 전후한 시기에, 고전무용이 강렬하고 즉흥적인 개성의 표현으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위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덩컨은 생애와 무용가로서의 생애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때문에 그녀의 영향은 실제적 이론으로보다는 정신적인 자극제로 남아 있다. 1920년대 동안 루스 세인트 데니스와 테드 숀이 미국의 무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덩컨이 창조했던 현대무용 전통이 최초로 그리고 가장 영향있는 완성도를 발휘한 것은 안무가인 마사 그레이엄의 작품에서였다. 한 세기를 풍미했던 그레이엄의 작품들이 형식에 있어 엄격하고 기본에 치우친 면을 그대로 지녔던 반면, 그녀의 가장 유명한 제자이자 후계자인 폴 테일러와 트윌라 타프의 작품은 일상생활의 온갖 소란스런 동작을 예술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스포츠·레크리에이션

20세기 후반부터 여가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스포츠와 위락산업은 미국에서 가장 큰 산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 매년 미국인들은 요트·스키·사냥·낚시·골프·테니스·사이클·볼링과 같은 스포츠 활동을 위해 수십 억 달러를 소비하고 있다. 미식축구·야구·농구·아이스하키 등 스포츠 행사는 고등학교·대학·프로 대항별로 벌어지는데 매년 수백만 명의 유료 관중을 끌어모으고 있다. 미국의 교육철학은 운동경기를 교육의 필수요소로 간주하며, 실제로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은 단체 또는 개인별 경기를 재정적으로 후원한다.

미국에서 조직화된 스포츠의 기원은 식민지 기간 동안 대중적인 운동이었던 통나무 굴리기와 옥수수 껍질 벗기기(husking bees) 같은 놀이에서 파생된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종종 미국 스포츠의 정수이며 '국기'(national pastime)로서 간주되는 야구는 19세기 중엽 영국의 놀이경기인 라운더스(rounders)를 미국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역시 영국에서 유래된 미식축구는 북동부에 있는 대학들에서 인기가 높아지게 되었다.

농구의 발명은 체육지도자였던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의 업적으로 간주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1891년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처음으로 대회를 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놀이였다가 캐나다에 수용된 아이스하키는 20세기 들어 주로 북부의 도시들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화려한 스포츠 행사들로는 프로 야구의 월드시리즈, 대학 미식축구의 로즈볼, 프로 미식축구의 슈퍼볼, 미국 프로 농구협회(NBA)의 플레이오프전, 프로 아이스하키의 스탠리컵 대회, 미국 오픈테니스 선수권대회, 미국 프로골프인 협회 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경주, 켄터키 더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 서러브레드 경마, 프로복싱 선수권대회 등도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 미국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대회의 단체전과 개인전에 대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Macropaedia| 김형기(金鎣起) 옮김

한국과의 관계

개항 이전

미국이 한국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때는 1845년이었다. 당시 미국 하원의 해사분과위원회 위원장인 프랫은 '일본과 조선에 파견할 통상 사절 연장'이라는 제목의 결의안을 제출했으나 미국의 내정문제로 인해 사장되었다. 그후 1866년 7월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 안에 들어와서 상품교역을 시도한 일이 있었는데 평양사람들의 분노를 사 선체가 불타고 선원 24명이 모두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보다 앞서 1866년초에는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정부에 의해 처형된 사건이 일어나 프랑스는 이에 대한 응징으로 9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함대를 파견해 무력시위를 했는데 이것이 병인양요였다. 미국은 이에 편승해 제너럴 셔먼호 피습 사건에 관해 프랑스와 공동으로 대처하고자 했으나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의 전후 복구문제와 멕시코 병합 문제로 프랑스와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여의치 못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흥선대원군은 이를 계기로 서양의 세력을 과소평가하게 되었고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반면 미국은 남북전쟁의 충격이 가시고 중국과의 교역량이 증대되자 조선과의 수교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좀처럼 문을 열지 않으려 하자 미국은 '함포외교'를 단행하기로 결정하고 아시아 함대 총사령관인 로저스 제독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함대를 파견했다.

1871년 5월 30일 이 전함들이 한강 하류에 당도하면서 신미양요가 시작되었다. 6월 로저스 함대는 강화도의 광성진·초지진·덕진진을 점령했다. 2일간의 한·미 격전은 처절했으며 광성진의 수비사령관 어재연(魚在淵)과 그의 아우 어재순(魚在淳)을 비롯한 수비대는 최후까지 저항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로저스 함대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더이상 진격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중국의 북부 항구로 회군했다.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한 지 2년 만인 1878년 4월 미국의회에서는 다시 한번 조선과의 통상수교안이 제안되었으나 이 제안 역시 상원이 휴회에 들어감에 따라 자동폐기되었다. 그러다가 2년 뒤인 1880년 미국은 슈펠트 제독으로 하여금 일본의 도움을 얻어 조선과 개항교섭을 추진하도록 했다. 일본이 도움을 거절하자 미국은 단독으로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는 조선이 앞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황준헌(黃遵憲)의 〈사의조선책략 私擬朝鮮策略〉이 입수되어 미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있었다. 한편 청나라의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은 슈펠트가 일본을 통해 조선에 접근하려 했던 것을 불쾌하게 여겨 자신이 조선개항협상을 주선하겠다고 나섰다.

한미수교협상은 톈진[天津]에서 1882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홍장은 조선이 청제국의 부속국임을 한미조약에 삽입시키려 했고 슈펠트는 이를 반대했다. 결국 타협안으로서 슈펠트는 별도 공한에서 조선이 청국과는 부속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로 했으며 조선측도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이 청국에 부속한다는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 마침내 한미수호조약은 1882년 5월 22일 미국을 대표한 슈펠트 제독과 조선조를 대표한 전권대관 신헌(申櫶) 및 전권부관 경리통리기무아문사 김홍집(金弘集) 사이에 서명되었다.

청일전쟁과 영일동맹을 거치면서 조선에서 일본의 지위가 강화되자 일부 미국인들은 일본세력의 비대가 극동에서 미국과의 충돌로 치달을 것을 우려했으나 조선의 국내상황이 매우 혼란하자 조선에 대한 경멸감이 더해가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은 일본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일전쟁이 종반에 이르러 일본으로부터 중재를 부탁받자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일본의 한국지배를 인정해준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후 몇 달 후 루스벨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켰다.

개항 이후

중국의 상하이[上海]·난징[南京] 등에서 활동하던 선교의사 앨런이 1884년 서울에 왔고 1885년 선교병원 광혜원(廣惠院)을 개원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었다. 미국의 북장로교회에서는 선교 여의사 엘리스를 보내 앨런과 합류시켰다. 광혜원은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을 바꾼 뒤 1886년 의학교를 설립, 16명의 학생을 뽑았다.

1899년에는 제중원의학교가 설립되었고 9년 뒤에는 졸업생을 냈는데 이것이 세브란스 의학교의 모태이다. 제중원이 1886년 처음으로 의학교를 설립하기 바로 전인 1885년 8월 아펜젤러가 2명의 학생만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신교육에 관심을 쏟고 있던 고종은 1886년 6월 아펜젤러의 개설학교에 배재학당이라는 교명과 간판을 하사했다.

이어 언더우드가 1886년 고아원 형태의 학교인 경신학교를 창설했다. 이어 언더우드는 1915년 3월 경신학교 대학부를 세웠는데 이것이 연희대학교의 전신이다. 한편 여선교사 스크랜턴은 1886년 5월 여학생 1명만으로 학교를 열었는데 이것이 이화여자대학교의 출발이었다. 이어 선교사들에 의해 미션 계통의 학교들이 많이 설립되었다. 1887년 미국의 전기기사 매케이는 경복궁 안에 증기발전기 2대를 설치하고 에디슨 전등 2개를 가설했다. 1898년 콜브란과 보스트윅은 서울시내 전차·전등·전화 가설경영권을 얻어 조선왕실과 공동출자로 한성전기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국 강점을 방관한 미국은 을사조약의 체결과 함께 1905년 주한미국공사관을 철수시켰고 한일합병조약을 정당화하는 등 한국과의 관계에 소극적이었다. 1919년 윌슨 대통령의 ' 민족자결' 조항에 자극받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언론들은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일본을 규탄했고 미국의회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작 미국 정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다가 겨우 전쟁 말기인 1944년부터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한국인이 볼 때 미국은 간접적인 도움을 바랄 수 있는 장소일 뿐이었다. 이곳은 선전·외교·자금조달의 거점이자 피신처로 이용되었다.

38선의 확정

1943년 카이로에서 루스벨트·처칠·장제스[蔣介石]가 모여 극동문제처리를 위한 3차 회담을 열어 카이로 선언을 채택했는데 한국독립은 '적당한 절차'를 거쳐 시킨다고 단서를 달아놓았다. 이 선언의 초안은 미국측이 작성한 것으로서 루스벨트는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신탁통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을 반대하고 '적당한 시기'로 늦추었던 것이다. 얄타 회담은 1945년 2월 루스벨트·처칠·스탈린에 의해 열렸고 루스벨트는 20~30년에 걸친 한국의 신탁통치 실시를 제안했다.

스탈린은 신탁통치안에는 찬성했으나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외국군의 한국주둔도 반대했다. 이 회담은 참가국 수뇌들의 의견 교환 정도로 그쳤다. 그후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이 다시 3국 대표들 간에 열렸다. 미국은 포츠담 회담중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게 될 경우 소련이 한반도를 모두 점령해버릴 것을 우려해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카이로 선언은 준수되어야 한다고 포츠담 선언에 명기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중 한반도 상륙을 포기하고 소련으로 하여금 한반도로 진격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의외로 쉽게 항복하자 일본 상륙작전이 필요없게 되었고 병력에 여유가 생겼다. 미국은 새삼 한반도점령을 고려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일반명령 1호'를 작성·발표했는데 북위 38도선 이북에 있는 일본군은 소련군사령관에게 항복절차를 밟고 그 이남에 있는 일본군은 미군사령관에게 항복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북위 38도선은 남북을 가르는 분단선이 되었다.

8·15해방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전쟁이 끝나자 미국과 소련은 1945년 8월 25일 한국의 38도선 분단점령을 발표했고 이어 9월 8일 하지 중장 휘하의 미군이 인천에 상륙함으로써 3년에 걸친 미군의 남한통치가 시작되었다. 미군정청은 통치 초기부터 임시정부 부인, 신탁통치안의 고수, 미온적인 대공정책 등으로 우익정치인사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특히 이승만(李承晩)과 하지는 정치적 견해 차이로 반목이 심했다.

이러한 이유로 하지는 김규식(金奎植) 중심의 중간우파와 여운형(呂運亨) 중심의 중간좌파에 의한 좌우합작으로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미국은 1947년경부터 시작된 미·소 냉전에 따라 모스크바 협정 노선을 버리고 한반도문제를 국제연합(UN)에 넘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승만의 복안대로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 0시를 기하여 미군정이 폐지되었다.

대한민국이 출범하자 미국은 제일 먼저 한국을 승인하고 초대 주한미국대표로 무초를 임명하고 한국에서도 초대주미대사로 장면(張勉)을 임명함으로써 약 반세기 만에 양국의 공식외교가 재개되었다. 한국은 건국 초기부터 북한의 군사적 위협, 신생국가로서의 경제사정 등으로 대미일변도의 외교를 펴 미국으로부터 군사·경제 원조를 획득하는 데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후 군사비를 삭감해야 할 국내사정 때문에 병력을 감축해야 했으므로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단정하고 약간의 병력과 군사고문단만을 남기고 전면 철수했다. 이 상황에서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6·25전쟁 이후 미국이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깊이 인식하면서 한국과 미국 간의 정치적·군사적 관계는 매우 긴밀해졌다. 또한 전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하여 안보를 다지고 경제원조를 강화했으며 전후복구사업 및 경제부흥사업을 적극 도왔다. 그러나 1960년 케네디 대통령 때 한국의 5·16군사정변을 못마땅히 여긴 미국이 민정복귀를 강력히 요구함으로써 양국의 불편한 관계가 한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그후 존슨·닉슨·포드 대통령 시대에는 비교적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으나 1970년대 후반 카터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군철수문제·인권문제·박동선사건 등으로 긴장된 관계가 또 한번 연출되었다. 레이건 대통령 때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그 이후로는 경제적인 문제로 서로 마찰을 빚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미국은 안보상 긴밀한 협조국으로,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래 꾸준히 군사원조를 제공해 한국군의 현대화를 도왔고, 최신예전투기를 한국에 배치해 방어력을 강화하는 데 힘써왔으며 매년 한미합동의 팀 스피리트 훈련 등을 통해 양국군의 실전능력을 높이고 있다. 또 국교개설 이래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고 아이젠하워·존슨·포드·카터·레이건·부시·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양국간의 당면문제를 협의했다.

6·25전쟁 이후 미국의 대한(對韓) 경제원조는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1961년초까지 한국경제에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그뒤 현재까지도 무역·자본도입·합작투자 등 경제전반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80년 미국 국제개발처(AID)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1946~79년에 한국에 146억 810만 달러의 경제원조를 제공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중에는 1960년대까지 제공한 무상원조 47억 원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1980년 한미국제무역은 한국의 무역규모의 27%를 기록했으며 액수로는 460억 달러에 이르렀다. 한국은 미국의 국제무역 상대국으로서 5번째 주요수출국이자 8번째 주요수입국이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이스라엘과 더불어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은 나라 중의 하나로 1962년까지 상당한 액수의 무상원조를 받았으나 그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적 타성 때문에 오히려 경제적 자립의욕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62년 무상원조가 끊어지고 차관으로 전환되면서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쌍무적 무역시대로 전환되었다. 대미수출의존도는 한때 51.7%로 정점에 달했으나 그뒤 다변화수출정책에 따라 1980년대에는 26%를 나타냈다. 1987년 미국의 대한수출은 87억 5,821만 달러, 수입은 183억 1,079만 달러로 심한 무역역조현상을 보였으며 이는 통상마찰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뒤 수출입간의 균형이 이루어져 대한무역에서도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으로 1996년 현재 대한 수출액이 333억 537만 9,000달러, 수입액이 216억 7,046만 5,000달러이다.

한편 한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는 그 뿌리가 깊은데 1885년 서재필(徐載弼)을 비롯한 한국인의 이민이 처음 실시된 이래, 유학생 및 노동자의 이민이 행해졌다. 1902년에는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121명이 도미하는 등 1905년에는 한국인 이민자가 7,000명에 달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주춤했던 이민은 6·25전쟁 이후 날로 증가해 아시아계에서 5번째로 많은 숫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1996년 현재 한국의 재미교민은 184만 9,108명, 체류자는 15만 1,330명에 이르고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뉴욕·시카고·호놀룰루 등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정치적으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생활근거지가 흑인거주지와 인접해 있고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가 많은데 1992년의 로스앤젤레스 폭동사건은 이러한 사정이 표면화된 대표적인 예이다.

북한과의 관계

미국은 1948년 북한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체제가 수립되면서 북한을 인식하게 되었고 6·25전쟁을 통해 적대국으로서 마주친 경험이 있다. 그후 냉전시대와 더불어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사실상 백지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2년 미국과 중국이 교류를 시작하면서 미국은 북한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한국문제는 남북한 간에 상호해결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남북한간의 정치협상에 자극을 주었다.

이후 미국은 남북한간의 직접대화를 찬성해왔으며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개최 이후 한국의 대북방정책의 전개와 동서냉전시대 종식에 발맞추어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개설하고 관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개론

미국 : 벌리츠 편집실 편, 웅진출판사, 1992
미국동부(해외여행 가이드 10) : 민서출판사 편, 민서출판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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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부(World tour guide 7) : 동아출판사 편, 동아출판사, 1991
미국동부(World tour guide 6) : 동아출판사 편, 동아출판사, 1991
세계를 간다(World tour guide 3) : 중앙일보사 편·발행, 중앙일보사, 1990
미국기행 : 윤백중, 유림문화사, 1989
미국의 이모저모 : F. P. 벤디티, 박상용 역, 형설출판사, 1988
미국(Library of Nations Series) : 한국일보 타임라이프북스 편집부 편, 한국일보타임라이프, 1987

지리

미국지리개관 : 주한미국대사관 국제교류처 편·발행, 1980
North American Terrestrial Vegetation : Michael G. Barbour·William Dwight Billings (eds.), 1988
Natural Landscapes of the United States, 4th ed. : E. C. Pirkle·W. H. Yoho, 1985
Landprints:On the Magnificent American Landscape : Walter Sullivan, 1984
Climates of the Unite States, 2nd ed., 2 vol. :, United States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1980
North America:A Geography of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 John H. Paterson, Oxford Univ. Press, 1965
Climatic Atlas of the United States : S. S. Visher, Harvard Univ. Press, 1954

국민

Population and People : Edward G. Stockwell, 1968

역사

미국의 역사 : 최웅·김봉중 공저, 소나무, 1992
미국의 역사 : K. C. 데이비스, 진병호 역, 고려원미디어, 1992
미국의 서부개척 : J. L. 리외페이루, 동아출판사 편집부 편역, 동아출판사, 1987
아메리카의 전쟁-독립으로부터 초대국으로(세계의 전쟁 8) : 신태영, 도남서사, 1985
미국현대사 : F. 프라이델·A. 브린클리 공저, 박무성 역, 대학문화사, 1985
미국사연구서설 : 이보형 외, 일조각, 1984

정치·경제

미국경제사개설 : 이주영, 건국대학교 출판부, 1988
미국의 헌법과 권력구조 : 정만희 편, 법문사, 1988
미국밀의 생산과 이용 : 김성곤, 한국제분공업협회, 1986
미국과 일본의 삼림자원정책 : 임업시험장 편·발행, 1985
미국 : 대한광업진흥공사 해외자원부 편·발행, 1984
미국정부 : 장병혜,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83
미국의 법원과 정치 : A. 콕스, 양승두·최양수 공역, 학연사, 1983
미국민주주의 상·하(사상문고 20·21) : A. D. 토크빌, 이영범 역, 문명사, 1983
The United States in the World : John Agnew, 1987
U. S. National Economic Policy, 1917-1985 :, Anthony S. Campagna, 1987
The Book of America:Inside 50 States Today, rev. and updated ed. : Neal R. Peirce·Jerry Hagstrom, 1984

사회·문화

미국사회와 문화 : 이용학 편, 한국방송통신대학 출판부, 1991
미국의 고등교육(탐구신서 52) : P. 우드링, 홍웅선 역, 탐구당, 1991
미국의 교육제도 : 차종환, 바울서신사, 1988
미국의 사회와 문화 : 권순찬·석경징·백운택 공편, 한국방송통신대학, 1985
미국의 대학 : P. 우드링, 진웅기 역, 범조사, 1984
미국의 자유문화 : 벨리냑, 김윤우 역, 삼성출판사, 1949

한국과의 관계

한미관계사 : 박영호·김광석 외, 실천문학사, 1990
미국외교정책과 한국 : 동덕모, 법문사, 1990
수교 100년 후의 한미관계 : 한승주,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82
미국의 대한정책(1945-1980) : 정용석, 일조각, 1979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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