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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도 펼쳐 보고 미국 여행 하자.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지도 검색 블로그)
by 미국 여행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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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5대 도시는 뉴욕, 로스안젤러스, 시카고, 보스톤, 필라의 순서로 되어있다. 이 서열은 도시들 끼리 서로 경쟁을 하면서 우열의 패권을 다툰 결과이다. 그 경쟁에는 시대적 상황과 도시 운영의 묘가 작용하면서 미국 도시들의 흥망성쇠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1. 보스톤



미국에서 초기에 위용을 자랑하던 매싸츄세츠 식민지의 수도, 보스톤은 1630년에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주하면서 수립되었다. 그들은 일요일에는 신을 경배하며 완전히 휴식하는 엄격한 종교적 규울을 가졌기에 요리마저도 하지않고 토요일에 삶아둔 강낭콩으로 식사를 하였기 때문에 보스턴은 “강낭콩 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보스톤은 건설될 때부터 교육의 도시로서 그 명성을 현재까지도 유지한다. 식민지가 세워진지 몇년도 지나지 않아서 주민들은 초등 의무교육제도와 하바드 대학을 설립하였고 1690년에 보스톤 시는 예산의 반을 교육에 할애하였으며 같은해에 이곳에서는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신문도 발행하였다. 이렇게 보스톤은 지성의 요람으로 성장하였다. 당연히 영국의 불공정한 조세정책에 저항하기 시작하여 독립혁명의 서두를 여는 단서를 가져온 것도 보스톤이었다.



보스톤 주변에는 비옥한 토양이 없었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주로 어업이나 조선업, 무역업등에 종사하였으며 식민시대에 보스톤은 대서양무역을 주도하면서 가장 크고 번영하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 패권은 1740년경에 이르면 필라델피아로 넘어간다. 그 이유는 뉴잉글란드에서 17세기 말 부터 교회 세력이 약화되는 데다가 독립 후에는 카리브해와의 무역거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1840년경이 되면 뉴욕이 대서양무역에서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반면, 보스톤 항에는 아일랜드계 이민들이 쏟아져 들어와서 도시의 빈민화가 조장되고 주領? 위생, 치안등의 도시문제가 발생하면서 보스톤의 영화는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1897년에는 미국에서 최초로 지하철을 수립하는 등 도시 문제 해결에 노력하여 성과를 거두었고, 보스턴에는 아직도 우수한 대학들이 밀집해있어서 미국 내에서 두뇌 도시의 역할을 잘해나가고 있다.





2. 필라델피아



퀘이커교도가 1680년대에 종교의 자유를 실천 하기위해 세운 펜실바니아 식민지는 토목기사 토마스 홈즈를 기용하여 도시설계를 하였다. 그 결과 필라델피아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설계되어 탄생한 도시가 되었다. 곧게 뻗어간 길들을 종횡으로 엮어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된 도로들은 그후 미국 서부는 물론 세계적으로 도시설계에 영향을 주었다. 종교적 자유와 다양한 민족구성과 개방적인 분위기를 갖고있었던 이 도시에는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식민시대의 지성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는 과학자, 언론인, 외교관으로서 독립혁명의 중추적 역で弩?하였으며, 또한 도시행정가로서 그가 우체국장을 역임할 때 필라델피아는 경찰서, 소방서, 책을 대출해주는 도서관, 문패달기, 공공병원 등을 갖추면서 모범 도시가 되었고, 그 이후에 하수도, 시장, 공원등의 설립에도 다른 도시에 앞서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진보적인 도시경영은 우수한 항구를 갖추고 도시주변에 비옥한 땅이 있는 좋은 지리적 여건 위에 수립된 필라델피아가 1740년대에는 미국내에서 가장 큰 도시로, 대영제국 내에서는 런던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여주었으며, 그영화는 백년을 갔다.



보스톤이 미국독립혁명의 시원지라면 필라델피아는 그것을 마무리한 완성지였다. 보스톤 항구를 영국이 폐쇄하자 13개의 식민지들은 필라델피아에 여 제1, 2차 대륙회의를 하였고, 독립선언을 선표하고 전쟁을 결의하였고, 건국 후 미국의 헌법이 수립된 것도 이 도시에서였눼? 전쟁기간의 대부분 동안 이 도시는 미국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후 수도가 뉴욕으로 잠시 옮겨간 후 다시 1790년에서 부터 1800년에 이르기까지의 10년동안 다시 수도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그다음에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1820년대에 이르자 필라델피아는 급속도로 발전해 가는 뉴욕에게 위협을 당하게된다. 그 주 원인은 교통혁명의 과정에서 뉴욕이 1824년에 이리운하를 개발하면서 허드슨 강을 따라 오대호로 연결되어 미씨시피강에 이르는 미국 내륙의 대동맥을 지배하게된데 있다.





3. 뉴욕



뉴욕은 1624년에 네델란드인들이 맨하탄 섬을 원주민들에게 사서 식민지를 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후 영국과 전쟁 결과, 네델란드는 1664년에 그곳을 영국인에게 이양하고, 영국인들은 이를 당시의 왕세자였던 요크공의 이름을 따 뉴욕이라고 개칭하였다.



1785년부터 5년간 뉴욕은 임시적으로 미국의 수도였으며 워싱턴은 이곳에서 1789년에 초대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세기 초반기에 이 도시는 왕성히 발전하여 갔다. 독립 후 미국과 영국은 껄끄러운 관계였었으나, 1812년 양국 간에 전쟁을 치룬 후 두 나라의 관계가 정리되어 가면서 교역이 늘어났다. 뉴욕은 1817년에는 보스톤을 거치지 않고 유럽으로 직접 향하는 정기여객선과 화물선 운행을 개통하였다. 이리운하 수립 후 뉴욕은 외국상품을 수입하여 내륙의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고, 또한 그들의 생산품을 수출함으로서 막대한 재원을 축적하였다. 뉴욕의 상인들 역시 중간상인들을 없애버리는 경매의 방법을 개발 하면서 경영혁신에 애썼다. 뉴욕은 이렇게 하여 1840년대에 이르자 미국에서 제일 큰 도시로 군림하게되었다.



제일의 도시가 된 뉴욕은 이제 도시의 환경미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1850년대에 프레데릭 로우 옴스테드를 시켜 쎈트럴 파크를 설계하였다. 그것은 거대한 규모의 숲과 운동장, 호수등이 어우러져서 도시의 한 가운데서 자연 공간적인 휴식처를 훌륭히 제공하였다. 그후 보스톤이나 몬트리올, 서울, 분당과 같은 여러 도시들이 “심장과 같은 공원” 을 도시 내에 설계하였다.



1883년에 만하탄과 부르클린 사이에 건립된 부르클린 다리는 강철 건축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에 따라 부르클린이 뉴욕시로 편입되면서 그다음 십년간 뉴욕 주변의 여러 지역들이 뉴욕시에 통합하게되어 오늘날의 거대한 뉴욕을 이루었다. 은행, 보험회사, 금융회사들이 만하탄에는 밀집하게되면서 19세기 후반기에 뉴욕은 미국 내에서 경제적 중심지가 되어갔다. 1차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의 다우닝가에 저축을 했던 국제 금융주들은 전쟁의 위험이 없는 뉴욕의 은행들과 거래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월스트리트는 다우닝가를 밀어 제끼고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여서 오늘 날까지 그 위상을 자랑한다.



뉴욕은 유럽에서 이민이 가장 많이 들어온 항구이다. 남북전쟁전에는 주로 유럽 서북부에서 이민들이 많이 왔으나 전후에는 이태리나 유태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흑인들도 남부에서 1차대전시기에 대거 이주하였다. 이 이민들은 남북전쟁 이후 급속히 발전하는 산업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했을 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이민의 유입과 더불어 도시의 문제는 심각하게 노출되었다. 우선 도시의 청결과 주택난, 교통난, 대기오염, 범죄등으로 이 도시는 몸살을 앓았다. 유입되는 이민들에게 직업을 알선 해준다던가 하며 뉴욕의 정치인들은 자기 동족 계통의 이민을 근거로하여 부패정치를 벌였다. 뉴욕시 민주당에서 주도권을 잡은 테마니홀의 트위드링은 1871년부터 시장직을 독점하면서 1934년에 라구아디아가 시장으로 취임할 때까지 보스정치를 하였다. 라구아디아는 뉴딜시대의 개혁의 기운을 받고 시정 개혁을 성공적으로 하였고, 뉴욕시민들은 비행장에 그의 이름을 붙여서 그의 공적을 기리고있다.



뉴욕에는 유태인, 이태리, 푸에르토리코인등이 몰려사는 게토가 형성되면서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하며 민족다원주의를 실현하는 무대가 되었다. 특히 흑인이 대거 밀집 거주하며 생긴 할렘은 1차대전에 도시의 공장으로 여든 흑인들의 엑소더스에 근거한다. 그들은 1920년대에는 할렘 르네쌍스를 이루어 제1대의 흑인 문인, 예술인들을 배출해 내었고, 재즈를 백인들에게 소개하였다. 흑인들이 도시에 밀집해서 살게된 결과, 그들은 서서히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여 가게 되었으며 이는 후에 흑인 민권운동의 근거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민권운동의 물결이 스쳐간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주로 도심에 격리되어 존재하는 흑인 슬럼가의 문제는 심각하다. 할렘은 처음에는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흑인들이 이사를 오면서 백인들은 도시 외각으로 빠져나가고 점차 흑인들 만의 주거지가 되어버렸으며 그곳에는 빈곤, 범죄, 마약, 자녀교육의 문제가 도사리고있다. 대도시 어떠한 곳에서도 볼 수있는 흑백의 주거지역 분리양태는 흑인의 문제를 백인들이 외면하게되는 원인제공을 하고있으며, 도시핵심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위협하고있다.





4. 시카고



시카고는 철도의 도래와 더불어 발전하였으며, 주변의 중공업 발전과 교통의 요지가 되면서 19세기말에는 제 2대도시로 변모하였다. 1794년에 전쟁에 진 인디안들은 미국에게 시카고강 입구의 6 입방마일의 땅을 양도하였다. 이곳에 백인들이 정착하여 시카고를를 세우게되는 것은 1837년에 이르러서 였다. 도시헌장을 받은지 11년만에 시카고는 운하를 개설하고 철도를 놓으면서 서쪽의 내륙지방과 연결되었다. 1856년에는 일리노이 쎈트럴 철도가 개통됨으로서 일리노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떠오르게되었고 1860년에는 링컨을 지명한 공화당 전당대회를 그곳에서 개최할 정도로 성숙하였다.



이당시 미조리의 쎄인트루이스도 서부의 곡물교역에 눈독을 들이며 시카고와 경쟁하며 철도를 확장해갔다. 그러나 남북전쟁 덕분에 이 경쟁은 시카고의 승리로 끝났다. 왜냐하면 쎄인트루이스시 에서는 노예제도 반대하는 세력이 우세하였으나, 그 시는 노예주인 미조리주 내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주정부는 군대를 쎄인트루이스에 보내 감시를 하였다. 이런 터에 주정부가 그 도시의 확장 사업에 협조할 리가 없었다. 한편, 남북전쟁 기간동안 시카고에는 비즈니스 부움이 일어나서, 식육가공업과 곡물교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농기구를 생산하는 맥코믹회사가 자리잡았다. 1867년에는 유니온 패씨픽철도가 개통되면서 쌘프란시스코에 까지 직통으로 이르게 되었다.



1871년에 일어난 시카고의 대화재는 하루동안 계속 타들어가면서 시카고의 비즈니스 지역을 완전히 파괴하고 300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화재 후에 시카고는 당시 최고의 건축가들을 동원하여 세계에서 최초로 고층건물을 1884년에 지었다. 그리하여 한때 건축계에서 시카고학파는 명성을 날렸다. 1890년에 이르면 이제 시카고는 미국에서 뉴욕에 다음가는 도시로 성장한다. 이에 걸맞게 그도시는 1893년에 콜럼버스 세계박람회를 그가 신대륙에 온 400주기를 기념하기위해 열면서 위용을 자랑하였다.



번성하는 시카고에는 이민들이 쏟아져들어왔다. 이에따라 빈한한 이민자들을 위해 1886년에 제인 아담스 사회복지관을 세워서 복지사업에 효시를 본 것도 그 도시에서였다. 1차대전 때에 시카고의 산업력은 더욱 팽창하여 무수한 흑인들이 유입되어 지금은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1920년대에는 시카고는 알 카폰과 같은 깽단들의 활약지로서의 악명도 얻었다. 1960년대에 이르자 마르틴루터킹이 암살된 후 시카고에서는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시카고 흑인 슬럼가의 문제도 뉴욕 못지않게 심각하다. 요즈음은 미국 중서부의 중공업과 곡물수출의 침체로 한때 활기차게 팽창하던 시카고의 성장은 주춤하여졌다. 그 대신에 2차대전후에는 로스안젤러스가 왕성하게 일어나서 현제 시카고는 3대도시로 위상이 떨어졌다.





5. 로스안젤러스



로스안젤러스는 1770년대에 스페인의 정착민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1848년 멕시코와 전쟁의 결과로 미국에 양도된 땅이다. 이도시는 대륙횡단 철도의 수립과 함께 확장되기 시작하였으며, 자동차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하던 1920년과 또 영화산업이 헐리우드에 자리잡는 1930년 사이에 급성장하였다. 2차대전이 도래하면서 비행기제조업, 전기제품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로스안젤러스는 또 한번의 도약하였다. 자동차의 보급이 대중화된 후에 발달했기 때문에 로스안젤러스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소유하는 도시에 속한다.



이곳의 인종은 다양한데, 스페인계인과 동양계과 흑인들이 살고 있다. 흑인들은 2차대전 때는 이 도시의 군수공장에 몰려들었다. 동양인들은 1960년대에 인종차별적 이민제도가 철폐되면서, 특히 한국인들이 대거 이민하였는데 그들은 로스안젤러스를 통하여 입국하였다. 이 도시는 1963년에 국제공항을 수립하면서 종래에 샌프란시스코로 입국하던 아시아계 이민들을 유치하였다. 이상의 여러 가지 이유로 로스안젤러스는 근래에 미국에서 둘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1960년대에 이르자 미국인들은 북부의 추위를 피하여 따듯한 남쪽의 썬넬트를 찾아 이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동부에서는 주로 마이아미로, 서부에서는 로스안젤러스나 피닉스 같은 곳으로 이주한다. 우주산업으로 급성장한 휴스턴도 썬벨트 내에 있다. 또한 아시아와 교역이 늘어나면서 태평양연안의 지역들이 발전하고 있다. 씰리콘 벨리의 예가 그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도시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서로 경쟁하며 공존한다. 새로운 교통수단과 기술문명을 어떻게 잘 이용하는가, 또 어떻게 시정운영을 하는가에 따라 도시의 흥망성쇠에 변화가 온다. 기업이 있는 곳에는 국내외에서 이민이 유입되기 마련이고, 빈곤, 범죄, 인종갈등을 포함한 도시문제들을 심각하게 노출하여서 상기 5대 도시들은 도시문제로 모두 골치를 앓고 있다. 미국의 도시는 현재 세계의 경제와 문화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지만, 대도시가 풀어가야할 어려운 문제들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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