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년(canyon)의 정수를 보려거든 미국 유타주로 가라! 브라이스와 자이언(zion), 캐년랜드, 그랜드캐년을 보지 않은 자 캐년을 논하지 말라!
캐년의 사전적 의미는 대륙에 있는 대고원 가운데 발달한 대규모의 협곡 즉, 골짜기를 의미한다. 대체로 거대한 골짜기의 양쪽 사면은 매우 비탈져 있고 골짜기가 아주 깊다. 작은 것은 수백 미터에서 가장 깊은 것은 1,500에서 2,000 미터에 이른다.


캐년은 아시아 처럼 생성된 지 오래된 대륙이 아니라 얼마 되지 않은 유년기 지형, 아메리카 대륙에 많이 발달돼 있다. 미국 유타주에서 아리조나주 북부까지 북에서 남으로 총연장 500㎞를 넘는 서부내륙의 방대한 땅에는 눈에 띠고 발에 걸리는 것은 모조리 캐년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캐년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각양각색 캐년들이 저마다 웅장하면서도 조악하고 거친 아름다움을 뽐내듯 그 자리에 선 채 장구한 세월을 웅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중국이나 유럽의 자연은 여러 모로 인간의 흔적이 가미돼 자연의 아름다움이 인공미에 훼손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신대륙 미국의 자연에는 인간의 손 때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많다.
콜로라도강 상류를 굽이도는 글랜우드 캐년에서 조차 "멋있어"를 연발한 나는 캐년의 본거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야 글랜우드는 캐년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글랜우드가 전주곡이라면 콜로라도 플래토(Colorado Plateau)위의 캐년들은 클라이막스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쉼없이 북미대륙을 흘러간 물은 지각활동이 뒤틀어 놓은 콜로라도 고원 일대에다 수백 수천개의 캐년을 빚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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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북쪽 끝에 브라이스 캐년이 자리 잡고 있고 자이언캐년과 화이트 클리프(white cliffs), 버밀리온 클리프(vermilion cliffs), 초콜렛 클리프(chocolate cliffs), 그랜드캐년으로 이어지면서 캐년들은 아기자기한 맛과 멋에서 웅대하고 장중한 모습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모두 같은 단층대에 놓여 있지만 단층을 이룬 퇴적물의 종류와 경도에 따라 오늘날 변화된 모습도 달라지게 됐다고 한다.
자이언캐년의 꼭대기가 브라이스 캐년의 가장 낮은 부분과 높이가 같고, 자이언의 최저점은 그랜드 캐년의 최고점과 같은 높이에 위치해 있다. 브라이스캐년에서 자이언캐년, 그랜드캐년으로 이어지는 계단식 지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서부로의 첫 여행은 사진에서 TV에서 본 그랜드캐년, '정말 가보고 싶어'란 내 마음의 이끌림에 못이겨 감행한 의지의 자유, 마음의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길이기도 했다. 인생에서 다시 없을 소중한 미국연수의 기회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꿈조차 꾸지 못했을 사치였다.


서부로 떠난 것은 2009년 9월 초순, 미국의 초등학교는 8월말 1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 한창 학기가 진행중인 9월의 여행은 쉽지 않았다. 연수에 대비해 한국에서도 나름대로 영어실력을 키워왔지만 낯설고 물선 땅에서 언어장벽에 힘겨워 하던 아이를 데리고 서부로 떠나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이가 미국학교에 소프트랜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유년시절 대자연 체험 만큼 강렬한 산 교육도 없겠다 싶어 학교를 10여 일간 빼먹기로 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마지막 굴레를 벗어버린 것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필요조건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칠 것도 방해받을 일도 없는 그 해 그 여행길은 그대로 행복이었다.
브라이스캐년에서의 감동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이언캐년으로 향한 것은 9월 20일. 미국 국도를 달려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빠른 고속도로을 마다하고 국도로 길을 잡았다. 브라이스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2시간 남짓 달리면 자이언 마운트 카르멜(zion-mount carmel)이란 캐년 진입도로에 이르게 된다. 이 길은 곧장 자이언캐년의 동문과 연결돼 있다. 캐년초입에서 정문까지는 약 15㎞ 거리, 험준하게 치솟은 거대한 바위산들을 한 굽이씩 돌아갈 때마다 ‘와~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중국의 대표적 명승 '장가계'를 일컬어 '와와관광'이라고 한다는 데 자이언도 그에 못지 않다.
국립공원 내부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바위산이 남북으로 가로 막혀 산을 넘지 않고서는 오갈 수 없는 곳에 이르는데 미국 정부는 이곳을 뚫어 1.8㎞의 터널을 만들었다. 터널은 자동차 2대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로 내부에 등이 없어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중간쯤 가다보면 자연채광을 위해 바깥으로 구멍이 나 있다. 이 곳을 통해 바라보는 캐년의 경치 또한 일품이다.


자이언 캐년을 보면 북한산 백운대나 인수봉이 떠오른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거대한 바위산이기 때문일까? 백운대, 인수봉 같은 바위 봉우리 수 백개가 몰려 자이언 캐년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백운대와 인수봉이 화강암이어서 흰색에 가까운 빛깔을 띠고 있는 것 처럼 자이언 캐년의 수 많은 봉우리들도 흰색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지만 간혹 연 붉은 색 봉우리도 눈에 띤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북한산 봉우리들은 단조로운 편이지만 자이언의 바위산들은 모양도 무늬도 매우 다채롭다.
어떤 것은 원뿔에 체크무늬가 그려진 것도 있고 혹은 빗살무늬 토기 처럼 바위산에 빗살이 쳐져 있는 곳, 동물 군상 같은 기이한 바위산들 등등 좁은 길 한 켠에 차를 세워두고 바위산을 기어오르면 바위산이 얼마나 거대한 지 실감한다. 바위가 풍화돼 바위산 사이에 생긴 작은 모래 언덕은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밟는 감촉이 부드럽다. 마치 밀가루를 밟는 것 처럼 부드럽고 곱다.
터널을 지나면 좌우로 180도씩 회전해야 하는 갈지자(之)형 굽이길, 낭떠러지길이 이어지는데 관광객들은 차에서 내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아름다운 풍광에 취한다.
본격적인 캐년 둘러보기는 정문 비지터센터에 차를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면서 시작된다. 일반 차량의 통행이 금지돼 있는 협곡 구간으로 접어들면 길 옆으로 버진 리버(virgin river)란 강이 흐르고 ‘court of patriarchs' 'Emerald pools' ' The grotto' 'hidden canyon' 'Weeping rock' 'Temple of sinawava' 등 주요 관광포인트가 나온다. 관광포인트에는 어김없이 트레일(Trail) 즉, 오솔길 규모의 등산로가 나 있어 캐년 구석구석을 체험할 수 있다.
그날밤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로 입성해야 했던 우리는 그 가운데서 시나와바 사원(Temple of sinawava)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협곡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사원은 한국식 절간 같지는 않았지만 마침 황혼녁이라 고즈넉한 산사의 서정이 세속에 찌든 나그네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주는 듯하다. 부질없이 까악까악 울어대는 산 까마귀들만 자이언의 태고적 정적을 부순다.
사원을 출발해 10미터 안팎의 협곡 속으로 걷기를 1.5㎞ 길 옆으로 깎아지른 바위절벽 위로 길죽하게 보이는 파란 하늘은 한 줄기 강물같다. 우기엔 협곡 사이의 수심이 깊어져 트레킹이 어렵지만 그 날은 수위가 얕아 물속을 따라 사람들이 가는대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협곡의 마지막 지점은 수위가 어른 허리춤에 이르러 고지를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귀로에 접한 산사태는 캐년 여행의 또다른 팁이었다. 버스를 타고 비지터센터로 향하는 길에 '우르릉' 굉음과 함께 캐년의 사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돌먼지를 피워 올리는 장관을 목격하게 된 것. 캐년은 강물이 융기 지형을 오랜 세월동안 깎아서 만들어 내지만 크고 작은 산사태를 통해서도 만들어 진다.
자이언 캐년은 관광포인트가 많아서 제대로 보려면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하지만 한정된 시간여유 때문에 많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긴채 다음 여정인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