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마라톤 참가기
국내에서 개최되는 대회도 무려 다 다니지 못하면서 외국까지 나가서 마라톤을 해야 하는지? 하고 마라톤을 모르는 사람은 의문을 던진다.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이 ‘마라톤의 꿈을 실현하러 보스턴까지 가구나’ 하고 강한 부정을 하지 않는데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세 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보스턴 마라톤에 참여 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기록, 둘째는 시간, 셋째는 돈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 못가고 있다. 기록도 만만찮다. 국내대회에서 공인기록이 50대는 3시간 35분 안에 들어야 한다. 부부가 보통 같이 참여하는 것이 더욱 영광스럽다고 하더라도 여자가 4시간안의 기록을 갖기가 싶지 않다.
작년에 지나가는 소리로 국내대회도 대회이지만 외국에 한번 가보자고 동호회 회원들이 장난삼아 던진 말이 씨가 되어 11월에 마음을 굳게 먹고 박 고문님 부부와 천부회장님 부부 그리고 나 5명이 신청을 했는데 고문님의 건강과 천사장의 사업에 바쁜 관계로 혼자만 등록을 하게 되었다 3.15마라톤에서도 홍성경 전회장님이 간다고 소문이 나 있어 붐이 조성되었다고 여겼는데 모두 뒤로 미루는 바람에 경남에서 보스턴에 가는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은 여행춘추에서 보내온 책자를 보고서였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여행계약금과 대회비는 지급한 상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난관에 봉착되었다. 4월2일부터 한 달간 그렇게 기다리던 교장자격 연수가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내년에 가자. 돈은 얼마간 손해를 보겠지만 포기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교장선생님에게 의논을 했더니 교장연수를 뒤로 연기하면 안 될까? 하고 가능성을 던져주셨다.. 담당 장학사에게 부탁하여 겨우 1기에서 4기로 연기하는데 성공하고는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교장자격연수까지 뒤로 연기해 둔 뒤라 이제 혼자라도 출발을 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녀오고야 말겠다고 재심 다짐한다.
보스턴 마라톤은 이렇게 출발부터 난관이었지만 다녀오고는 잘 갔다 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메운다. 미국 독립운동 당시 기마병이 진군하여 승리하였던 거리를 기념하여 마라톤 코스로 하였다고 한다. 금년이 111회째이니 오랜 역사를 간직한 대회이다. .
보스턴 마라톤은 그야 말로 마라톤축제다. 잘 뛰고 못 뛰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나로 인해 다른 이가 힘을 얻고 즐거워 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이웃, 친구를 위해 주로에서 응원을 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골인하여 감동을 함께 나누는 일련의 모든 행위들이 가족과 나아아가 사회를 하나의 커다란 핵으로 뭉치게 하는 스포츠이다. 축제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어 마라톤은 이렇게 하는 것이 구나를 느끼면서 마라토너들에게 꼭 한번은 참석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해방이 되고 나라도 아직 체제가 갖추지 않은 시기에 서윤복옹께서 2시간 25분 39초로 세계 신기록을 내면서 우승을 했고 1950년 제 54회 대회에서는 함길용선수가 2시간 32분 39로 우승을 송길윤 그리고 최윤칠 선수가 나란히 ,2,3등을 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고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1년 105회 대회에서 이봉주 선수가 2시간 9분 42초로 당당히 1등을 하여 마라톤 강국을 만천하에 알린 곳이 보스턴이기 때문이다.
혼자 미국 땅을 밟기에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여행사에 일임을 하여 여행과 마라톤을 병행한 9박10일의 여정에 올랐다. 4월 13일에 미국으로 직항하지 않고 김해에서 일본나리타로 나리타에서 4시간을 기다려 시카고로 시카고에서 다시 보스턴으로 가야 하니 결국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에 도착해도 하루가 꼬박 걸린 셈이다. 그중에 날짜가 변경되었는데 13일(우리나라 시간 14일오전) 저녁 늦게 새라톤 니드햄호텔에 안착할 수 있었다.
시차적응을 위해 일찍 오는가 보다 했는데 나름대로 할 일이 많았다. 보스턴의 다음날 아침에는 시차적응을 위해 훈련 겸 조깅을 하고 아침 식사 후 보스턴 마라톤 엑스포 행사장에 도착하여 배 번호와 티셔츠를 수령 한 후 각종 마라톤 용품을 구경하고 구입할 시간을 주었다. 국내보다 비교적 싸다고 생각이 되는 것만 몇 가지 그리고 기념이 될 만한 것 몇 가지 사고 둘려본다고 보니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밀려갔다가 밀려오는 진풍경이었다.
대회 3일전에 배번호를 직접 수령하도록 하고 엑스포장으로 출구를 만들어 놓았으니 대부분 이곳에 물건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일찍 가지 않으면 한정된 물품은 동이 날 정도이니 필요한 것은 먼저 사야 한다고 가이드가 귀띔 해 주었다. 특히 모자와 기념 티는 단번에 없어지고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못 살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쇼핑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한사람이 사면 몽땅 따라서 사는 바람에 예정된 시간에 버스에 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후에는 42,195km 주로를 다 답습하지 못하고 25km 지점에서 피니쉬라인까지 차량으로 안내해 주어 마음가짐을 한 번 더 할 수 있었다.
이튿날은 우정의 달리기가 있어 아침조깅은 생략되었다. 현장에서 인적사항을 적어 제출하면 티셔츠와 배번호를 즉시 나누어 주는데 질서가 정연하다 지난해는 한국 사람이 티셔츠가 마음에 든다고 여러개 타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우리도 잘 사니 그러지 않은 것이 좋겠다고 한 가이드의 한마디에 아무도 두 번 티셔츠를 타는 사람이 없었다. 티셔츠에는 Freedom Run 이라 적혀 있고 꽤 괜찮아 보인다. 비는 계속오지만 주위를 사진기에 담기위해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태극기를 들고 찍고 흔들며 찍었다. 또한 여행춘추 깃발 밑에서 전체사진도 찍고 하는 사이에 출발신호도 듣지 못했다.
대형 태극기 뒤에 한국인들이 줄을 서서 조깅을 하였고 뛰면서 보스턴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거리는 약 6km이었는데 뛰어서 피니쉬라인를 먼저 밟아 보았다. 내일은 이곳을 통과할 때 이렇게 즐겁게 들어와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 피니쉬 라인 옆에 놓여 있는 벤치를 보면서 가이드에게 물었다. 저곳엔 누가 앉습니까? 가이드의 말은 나의 예상을 빗나게 했다. 저 곳에 앉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 자리값이 150-300불 하는데 매진된다고 한다. 세계의 마라톤 선수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임시로 관람석을 만든 것이다.
달리기를 마치니 물품을 나누어 주었는데 비를 맞으면서도 서둘지 않고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배워둘만 하다. 먹을 것과 기념품은 충분히 주어 모두들 필요 이상으로 가져다 버스 안에 풀어 놓았지만 처치곤란이었다. 빵을 너무 많이 가져와서 호텔방에 두고두고 먹었는데 다 먹지 못해 가방 속에 넣은 것은 곰팡이가 필 정도이다.
낮에 비가 오는 관계로 일행은 일찍 호텔에 들어왔다. 아무 할일이 없다. 시차적응이 안되어 잠이 쏟아진다. 잠을 자지 않아야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2시간 정도 잠에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호텔방에서 뒤척이다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 방에 왔다. 그리고 가지고 갔던 책을 보고 TV채널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는데 낮잠의 영향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술을 한잔 마시고 싶어도 내일 일전을 치러야 하는데 고생을 하지 않기 위해 참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별로 할일이 없다. 밖에는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나갈 수도 없다. 이웃 방을 기웃거려도 보았지만 그들도 뚜렷이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메우고 있다. 룸파트너는 밤11시 쯤 되니 이불을 뒤집어쓴다. 나도 같은 행동을 취하고 불을 모두 껐다. 창 밖에 빗소리 바람소리가 오늘 따라 유난히 더 크게 들린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기차소리 같이 크게 들릴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꼭 그렇다. 그렇다고 혼자 불을 켜고 책을 볼 수도 없다. 파트너도 잠이 잘 오지 않은지 침대에서 뒤척인다. 그러다가 조용하다 잠이 들었는가 보다 그런데 나 같은 잠꾸러기가 잠이 오지 않다니 대단한 이변이다. 머리만 붙이면 앉아있건 서있건 잠을 잘 수 있는 나였는데 왜 잠이 오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 한국시간으로 보면 낮이다. 낮에도 잠은 얼마든지 잘 수 있는데 어찌된 일인가 ?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지나간 시간의 여정을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3시간 정도 글을 쓰고 나니 손목이 다 아프고 눈이 따갑다. 룸메이트도 한 두 번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드는 모양이다. 새벽 3시 30분에 다시 자리에 눕는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5시에 룸메이트 권춘광씨가 일어나 여행사에서 준비한 찰밥을 받아왔다. 포항에 산다는 권춘광씨는 오늘이 자기 60주년 생일 이란다 생각해 보니 회갑 기념으로 자식들이 보스턴 여행을 보낸 것 같다. 마치고 나면 저녁에 회갑연을 베풀어 주어야지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은 따갑지 않은데 몸은 뻐근하여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안 좋아 스트레칭으로 대강 몸을 풀었다. 세수를 마치고 나와 받아온 찰밥을 먹고 준비해 둔 마라톤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몇 번인가 망설인다. 날씨가 차가워 짧은 옷을 입지 않고 긴 옷으로 갈아입어 본다. 그리고 밖으로 한번 나갔다가 들어와 결정을 했다. 긴 타이즈에 긴팔 티 그리고 동호회 티를 덮어 입기로 했다.
룸파트너는 어제 먹다 남은 초밥을 싸들고 간다. 상했으면 큰일인데 하지만 말릴 수는 없다. 출발하고 1시간까지 배가 아파 혼이 났다고 하니 이 초밥의 영향이었다고 본다. 6시50분에 프론터로 나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 복장으로 삼삼오오 모여 있다. 7시에 스트레칭을 잠시하고 깃발을 앞세워 승차를 했다. 일찍 출발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홉킨스 고등학교(스타트지점)까지는 30분정도면 된다고 했는데 한 시간은 훨씬 더 걸린 것 같다. 그래도 혼잡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차들이 모두 대회 장소로 가고 있는 것 같고 교통순경들이 교통지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대회본부에서 배부한 비닐 부대에 두꺼운 옷을 챙겨 넣고 비닐 우의를 덮어쓰고는 운동장을 향해 줄을 서서 걸었다. 대한민국 태극기를 앞세워 3차량에 나누어탔던 사람들이 내려 줄을 이어 가고 있으니 외국기자들의 표적이 된다. 카메라맨들이 따라 붙는다 비가오더라도 단체사진을 찍고 모두 옷을 맡기려 각자의 배번 차량인 주황색 버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10000번이 넘은 배번호의 차량은 주위에 있는데 10000번 이내의 배번호의 차량을 찾지 못해 비를 맞으며 한참을 헤매다 안내를 하는 사람에게 배번호를 보여주니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는 곳이 있다. 그 쪽으로 갔더니 아직 아무도 짐을 맡기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짐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어 허급지급 배번호에 해당하는 차량에 올라탔다. 해당버스에 무조건 올라타서 짐을 맡기니 노-노-가 연발이다. 다시 내려 번호를 확인하고 배를 내 밀며 마이 백 차아지를 연방 부르짖어도 못 알아듣는 것 같고 화장실도 급하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 짐을 던져놓고 내려가니 그때서야 오케이하며 웃어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짐을 갖고 들어오면 분실 우려가 있고 질서가 흐트러지니 창밖에서 자기 번호 밑에 서서 유리창위로 인수인계해야 한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날씨는 춥고 화장실은 급하고 간이 화장실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우리말로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교민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산다고 하면서 고향을 묻는다. 경남 마산입니다. 언제 이민 오셨지요 20년 된다고 하고 3년째 참석한다고 한다. 3년째 참석한다고 해도 대단해 보인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데 우리가 중국에 가서 마라톤대회 참석하는 것과 같다. 무척 반갑다. 서로 멀리서 왔다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화장실은 남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이 줄을 서 있다가 순서가 되면 들어가는데 화장실 앞 5-6m 떨어져 줄을 서 있는 것이 우리하고 조금 다르다. 잔디밭이 물에 고여 있어 이미 신발은 다 적셨다. 볼 일을 보고 나오니 한국 사람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잡을 수 없다 가만히 주위를 살피니 판쵸같은 우의를 덮어쓰고 한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사람들만 쫓아가면 되겠구나 싶어 그 인파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역류하는 사람들이 있어 의심도 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가는 쪽을 따라가야 할 것 같다.
길을 꽉메워 가고 있으니 틀림없겠지 1km쯤 걸어가니 스타트 라인이 보인다. 마이크 소리가 들리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비가 계속 와서 비닐 푸대로 우의를 만들어 덮어쓰고 나의 자리를 찾아갔다.
배번호가 두 종류다 하나는 청색으로 12000번 이하이며 10시에 출발하고 또 하나는 황색으로 12000번 이상이고 10시 30분에 출발한다. 나의 번호가 8758번이니 8000번과 9000번 사이에 서 있어야 하는데 시간은 아직 30분 정도 남았고 비는 주룩 주룩 오지요 날씨는 추워 도저히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어 옆으로 살짝 빠져 나와 남의 집 처마 밑에 비를 피하고 있는데 등에 58년 개띠라고 우리말로 적힌 사람 3명이 처마 밑으로 찾아들어온다. 와! 반갑습니다. 인사를 했더니 자기들도 반갑다고 하며 잘 뛰자고 하고는 어느 여행사로 왔는냐고 물었더니. 예스앤비여행사이고 마치면 캐나다로 먼저 가고 와싱톤으로 내려올 것이라 한다. 그 여행사에서 선수55명과 가족25명 모두 80명 정도 왔다고 하니 우리가 170명이니 한국에서 250명 정도 온 셈이다. 보스턴에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제일 많이 오는 나라라고 한다.
비는 피해 있으나 추위는 어쩔 수 없어 추위를 이기려고 스트레칭을 계속하고 있다 집 주인이 나와서 빙긋이 웃고 무언가 말을 하고 있어도 쫓아내지는 않을 것 같다.
드디어 출발 10분전이다. 주로에 주자들 속에 묻히려 들어간다. 그런데 캐나다인 같기도 한 사람이 페트병에다 소변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자는 보지 않지만 남자들은 흘깃 흘깃 쳐다본다. 얼마나 급하면 소변볼 시간이 없었겠는가? 빗방울이 작아지는 순간 저 앞에는 출발 신호가 울렸고 우리는 서서히 걷기 시작했는데 같이 온 여행사 한국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넷타임 시계를 눌려면서 출발을 했다. 길 양쪽에는 군중들이 괴성을 질러댄다. 나 또한 파이팅하고 가지만 아무도 파이팅 하지 않는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파이팅은 상대가 있는 전투적인 용어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내리막길이다. 1km당 5분 페이스로 마음먹고 천천히 가고 있는데 모두들 나를 앞질려 간다. 나도 좀더 빨리 갈 수 있지만 그리고 내리막이니 더 달릴 수 있지만 나중을 생각하여 참고 참았다. 주로의 양쪽에는 이미 벗어던진 옷들이 부지기수다 이미 이들은 땀이 난 모양이다. 빗방울이 약해져서 비옷도 벗어 던졌다.
이곳 보스턴에서는 거리 표시가 모두 마일로 되어 있다. 아예 길바닥에 표시되어 있다. 역사가 깊은 곳이어서 아무도 지우지도 않고 그대로 있어 마일당 8분을 달려야 계산이 맞을 것 같다. 1마일(1,6km)을 달리면 틀림없이 게토레이와 물이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의료진이 1마일 마다 설치되어 있고 매 지역마다. 전문의 응급 구조사, 공인트레이너, 물리 치료사, 간호사등이 상주하고 있다. 이런 곳 이 주로에 25군데나 된다고 한다. 다만 물과 게토레이 밖에 없고 주로를 꽉 메운 응원하는 시민들 속에는 어린아이들이 고사리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받아가기를 애타게 부르짖고 있는 것 같아 지났다가도 밀감 한 조각 비스켓 한 개를 받아먹으면 매우 고맙다고 웃어 주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아예 하나씩 받아먹으러 갔다.
5km쯤 주위를 둘러보며 달리고 있는데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 들린다. 한차를 탔던 사람이다 무심코 내 앞을 지나면서 파이팅을 한다. 등에 적혀 있는 글씨는 틀림없는 한글이다 동래학원 수능시험 최고 획득, 동래여고 서태건이라고 적혀 있다. 이사람 옆에 바짝 붙으면서 동래여고에 근무합니까? 그렇다고 한다. 어! 동래여고 교감이 나 친구인데 강교감 맞죠! 나를 쳐다보면서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렇게 주로에서 동행을 만났으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있나. 기록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니 나보다 못해도 젊은 사람이니 오늘 같은 날씨에는 천천히 둘이 호흡 맞추어 뛰면 되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다. 그럼 선생님 같이 갑시다. 나도 오늘은 4시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
학교이야기 그 학교 교감이야기 마라톤이야기를 하면서 주위도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어 답례하니 언제 10km를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그러자 옆에서 뛰고 있는 서선생님이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쵸크렛 들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자 조그마한 아이 둘이 과자봉지를 들고 있어 가까이 가니 손을 내민다. 얼른 받아 봉지를 뜯어 몇 개를 얻어 먹어보는데 목이 탁탁 막힌다. 이제 물을 먹을 시간이다 물을 서비스 하는 곳으로 가서 한 모금 먹고 나니 좀 나아졌다. 시계를 보니 km당 5분 페이스다
처음으로 목을 적셔 본다. 길거리에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가 꽤나 많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과자 1개 밀감 한쪽 그리고 비스켓 한 개를 고사리 손에 들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모르고 지나칠 수 도 있지만 보고는 그냥갈 수 없어 한 조각 받아먹고 손을 잡아 주면 폴짝 폴짝 뛰면서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잠시 자세를 정비하고 다시 달리고 있는데 건너편 응원자 중에서 코리아! 코리아! 하고 불려댄다. 뒤돌아보니 한국 사람인 것 같다. 다시 건너 쪽으로 가서 손바닥 치면서 파이팅, 대-한민국 한다. 그들도 대-한민국 한다. 기념사진도 한 장 찍고 다시 주로로 돌아와 달리기를 계속했다. 손을 흔들고 고함치는 그들에게 ‘파이팅’ 하고 외쳐 보았는데 이들은 아무도 파이팅을 하지 않고 good job! , best job! 하고 응원을 한다. 어쨌든 우리의 문화가 접목되어 있어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과 우리는 달리는 자와 응원하는 군중이 한 덩어리가 되어 목표는 무사완주다 엘리트들은 벌써 마스터즈의 무리를 벗어 난지 오래다. 기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앞만 보이지 옆은 보이지 않아 모두 지나갔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잘 달릴 수 있도록 비가와도 우산을 쓰고 목청이 터져라 고함을 지른다. 알아듣건 못 듣건 간에 응원하는 소리는 틀림없었다. 수십년을 이 길에서 어린시절부터 이 광경을 보아왔기에 그들의 문화가 정착된 것 같다. 질서정연하게 서서 박수 치며 지친 자를 깨우는 고함소리며,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는 말 당신은 최고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주자들은 마냥 들떠있다. 그리고 속도가 더 빨라진다. 자신도 모르게 오버 페이스 하는 것 같다.
어느덧 19km 지점까지 왔는데 조금 오르막이다 그런데 함성이 앞에서 들려온다. 둘이는 얼른 가보자 하는 눈치로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역시나 다를까 말로만 듣던 웨슬리 대학 여학생들이 주로에 3-400m정도에 겹겹이 서서 환호인지 괴성인지 야단이다. 해마다 이 웨슬리 대학생들이 좀이나 별나던지 달리는 사람에게 방해를 줄까봐 주로로 넘어 오지 말라고 가드레인을 쳐 놓았다. 웨슬리대학은 클린턴 전대통령 부인 힐러리여사의 모교이기도 하다.
이제 비도 그쳤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카메라를 빼어들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여기 저기 모여들어 둘을 에워싼다. 서선생님과 바꾸어 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여학생들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들 중에 한 여학생에게 가지고 갔던 열쇠고리를 하나 선물했다. 열쇠고리에는 한국장구가 달려 있어 매우 좋아했다. 우리 뒤에 뛴 서울에 사는 이해영씨는 자기나이에 맞게 북이 달린 70개의 열쇠고리를 가지고 와서 웨슬리 대학생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나도 사실 이분에게 얻어 간 것이다. 또 한분은 참빗을 70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알리는 민간외교의 한사람이라고 자부심이 대단들 했다. 이분들의 나이가 70세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다음에 오는 분들에게 이 사실을 꼭 알려 주고 싶은 굿 아이디어이다. 길가에 있는 학생들에게 화이-파이브를 하고 오는 사람 사진 찍는다고 멈추는 우리와 부딪쳐서 연방 아엠쏘리라 하면서도 웨슬리 대학 부근에서 10여분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 하프를 지나면서 바나나를 한 개씩 얻어먹고 장갑 속 손바닥에 들어 있던 스포츠겔로 탄수화물을 보충했다. 그리고 또 작은 오르막을 만났다. 이제는 좀 힘들다는 기분이 든다. 얼마 후에 15마일 급수대가 그리워진다.
15마일(24km)을 막 지나니 길가에서 바셀린을 나무막대에 발라 서있다. 처음에는 꿀인 줄 착각하고 받아먹었다는 경험자들의 말이 생각난다. 이제 목이 타서 물이 있는 곳마다 찾아 든다. 물을 먹을 때는 약간 속도를 늦출 수 있어 쉰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몸이 지치고 있다는 증거다 서선생님이 게토레이를 쥐면 나는 물을 쥐고 뛰면서 먹다가 서로 바꾸어 먹는다. 이곳 게토레이는 매우 진하여 물과 병합하여 먹는 것이 좋다는 사전 지식대로 했다.
얼마 후 보스턴대학 앞을 지났다. 이곳에는 웨슬리 여대생 보다 열광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로에 일렬로 서서 고함소리 응원소리에 그 힘든 오르막을 오를 수 있었다. 이 오르막이 그 유명한 상심의 언덕이라 한다. 존 케리가 1등으로 가다가 엘리슨 브라운(당시 우승기록 2:33:41)에게 추월당한 뒤 상심하던 모습을 지켜 본 보스턴 글로브지의 기자 네이슨이 자신의 기사에 "breaking Kelley's heart" 라는 문구를 사용 하면서 불리게 된 유래라 한다. 존 케리는 미국 육상의 아버지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만 61회 참가하여 2차례나 우승과 함께 58회나 완주하였는데 1992년 84세의 나이에 마지막으로 완주하였던 미국 육상의 신화적인 존재다 우승 당시와 77세 때 완주 당시의 2개의 동상이 주로 32km 지점에 세워져 있음을 보아도 짐작 할 수 있다. 어제 이미 우리일행은 이곳을 답사했다. 존 케리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각자가 다짐을 했을 것이다. “한번 해보자” 상심의 언덕을 오르기 전에 이미 보스턴대학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맥 빠진 모습 보다 생기 날 때 한 컷이 중요했다. 완주 후 호텔에 들어와 사진을 되새겨 보니 이 사진이 제일 멋지게 나왔다.
오르막을 다 오르고 나니 35km 지점이 나왔다. 갑자기 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부터는 모두 내리막길이니 이제 그동안 빼앗긴 시간을 보충할까 했는데 종아리에 통증이 온다.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발이 무겁다 가지고 갔던 마지막 스포츠 겔을 먹고는 물을 마셨는데 조금 기운이 돌아올 것만 같다. 38km 지점을 통과하니 주로양가에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 응원소리가 더욱 요란한데 이제 이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동행하던 서선생에게 먼저 가시오. 나 페이스 좀 늦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기록경기가 아닌데 고통을 감수 하면서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정신이 앞서니 속도가 점점 늦어질 수밖에 없다. 나와 나 자신의 타협이 이루어 진 순간부터 km 당 6분으로 떨어지고, 좀 있으니 7분대로 떨어진다. 모두 나를 앞지른다. 정말 이들은 잘 달린다. 시내 거리에는 뚱녀 뚱돌이만 보였는데 이 주로에는 늘씬 날씬한 사람만 다 모여서 나를 앞지르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남은 거리는 3km, 시계를 보니 3시간 40분이 조금 지났다. 그래도 관중을 향해 손을 두 차례 흔들고 태극기를 쳐다보면서 대-한민국!을 악을 쓰면서 외쳤다 그리고 다시는 대한민국을 외치지 못했다. 마지막 1마일 표시가 나타났다. 같이 달리던 서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5분대로 뛰어야 4시간 안에 들어 갈 수 있다. 이를 악물고 뛴다. 그러니 인상이 좋을 수가 없다. 주위에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도 머뭇거리는 주자를 몇 명을 제치고 앞지른다. 그리고 저 멀리 피니쉬가 육교처럼 보인다. 주위에는 함성이 울리는데 옆을 쳐다 볼 수가 없다. 그래도 피니쉬라인 50m 전방에서부터 속도를 늦추어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손을 들어 승리의 표시를 하면서 꼴인 했다. 3시간 56분 11초 정말 잘 맞추어 들어온 것 같다. 내 나이 56세에 56분을 맞추었으니 잘 된 일이라고 스스로 나를 위로 할 수밖에 없다.
꼴인 지점을 통과하자 이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리고 관중의 환호소리가 들린다. 수많은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것도 눈에 보인다. 의료진이 꼴인 지점에 바짝 붙여 있어 혹시나 불상사가 있을까 앰블란스까지 대기하고 있고 흴체어가 3인 1조가 되어 5m 마다 대기하고 스포츠 마사지 팀이 진을 치고 있다. 땀이 식어 감기 들까봐 자원봉사자들이 비닐로 감아 주면서 테이프를 발라준다. 레이스 칩을 풀어주는 자원봉사들이 직접 목에 완주메달을 걸어주고 특히 나이 든 분은 장하다면서 포옹까지 아끼지 않는 미덕을 사진에 담아가면서 1km쯤 걸어오는데 한국사람 한명이 수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을 붙인다. 반갑다 그리고 완주의 희열이 있기에 아무나 잡고 사진 찍는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내어 주면서 먹을 것을 받아가라고 한다. 우유부터 그리고 빵 한 조각 먹고는 옷을 찾았다. 고통을 같이 나눈 애인끼리는 입맞춤도 길게 하고 있다. 한숨을 돌리고 멀리 있는 깃발(여행춘추)을 향해 완주자 한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스에 승차를 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박수로 환영 해 준다. 그래도 1호차에 탈 수 있어 다행이다. 2호차는 마지막 주자까지 태워 온다고 1시간이 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쉽지는 않은 코스다. 작은 언덕이지만 26개가 있고 비가 와서 날씨는 악천후였는데 대한민국의 주자들은 아무도 포기 하지 않고 모두 완주했다
여행춘추에서 저녁에 뉴턴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만찬을 했는데 대단한 사연이 많았다.
이 학교를 빌린 이연우 장로는 자기 아들이 이곳에 학생회장을 한다고 한다. 본인도 마라톤을 하는데 미국 50개 주 마라톤과 세계 유명 마라톤 50개를 완주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지금은 거의 마무리 되어 간다는 말에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11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는 60세 이상이 18분, 70세 이상이 5분이나 있었고
100회 마라톤에서 보스턴마라톤이 97번째 완주한 여전사가 있고 ,111번째 완주하여 보스턴회수와 같이 맞춘 울산마라톤소속 배달수씨, 그리고 11번째 완주자, 초청자 중 1풀을 한사람도 있어 이벤트가 대단했다.
이번 11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함께 하시어 완주하셨던 모든 분들과 함께한 가족 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마라톤에 이어 9박10일 동안 동부관광까지 함께하신 2호차 모든 분들께도 즐거웠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기에 너무나 행복하였다는 말을 남기면서 이 글을 맺고 싶다.
2007.4.25 손찬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