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는 뉴욕 양키스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양대 명가로 손꼽히는 구단이다. 비록 성적면에서는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그동안의 업적을 고려하면 명문구단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1947년 단장 Branch Rickey는 100년 가까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인종의 벽'을 허물었다. 최초로 흑인선수 Jackie Robinson을 등용한 것. 그 후 Robinson과 다저스는 온갖 박해를 견뎌내며 빅리그 역사에 선구자로 남았다.
1957년 구단주 Walter O'Malley는 프랜차이즈를 로스엔젤리스로 옮기는 파격을 단행했다. 뉴욕의 거대시장을 버리고 서부지역으로 이동한 사건은 말 그대로 '사건'이었다. 1995년 Nomo Hideo의 신인왕 등극은 새 시대를 알리는 전조였다. Nomo와 박찬호의 대활약은 메이저리그의 눈을 아시아시장으로 돌리게 한 결정적인계기가 됐다. 이밖에 신시내티 레즈와 더불어 시작한 최초의 야간경기(1938년), 최초의 정규시즌 라디오 중계(1939년), 최초 연관중 3백만돌파(1978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다저스는 명실공히 '메이저리그의 개척자'였다.

다저스는 양키스(26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이상 9회)에 이은 월드시리즈 최다승 4위팀(6회). 그러나 다저스의 사감(史監)에는 쓰라린 기억도 많다. 총 12번의 월드시리즈 패배는 최다 기록이다. 다저스에게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는 '철천지 원수'가 있다. 뉴욕 시절부터 서로 으르렁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은 프랜차이즈 이전 후에도 각각 로스엔젤리스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여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1951년 당시 '황금시대'를 보내고 있던 다저스는 시즌 내내 선두를 유지하다 막판에 가서 자이언츠에게 덜미를 잡혔고, 결국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세계로 울려퍼진 한 방'을 맞았다. 1965년도 최종전에서 자이언츠에게 동률을 허용한 끝에,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끝내기 밀어내기로 패했다.

이로부터 28년 뒤인 1993년, 이번엔 다저스가 화끈한 고춧가루 세례를 퍼부었다.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시즌 최종전. 다저스는 이미 지구 4위가 확정되어 부담이 없는 상황이었고, 샌프란시스코는 승부의 향방에 따라 지구우승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다저스는 끝까지 스포츠정신을 발휘(?), 자이언츠의 포스트시즌행을 저지했다. American Association의 최강자, Brooklyn Bridegrooms가 내셔널리그로 활동무대를 옮긴 것은 1890년. 신입생의 전력은 막강했다. 다른 내셔널리그 팀들이 'Player's League'의 출범으로 인한 주전선수들의 유출을 막지 못한 반면, 다저스는 대부분의 선수들을 지켜냈기 때문. 그 해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111년 역사'를 개막하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후 부진했던 다저스는 1899년 Charles Ebbets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구단주 Harry Van der Host간의 밀약이 성사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Ebbets는 다저스 지분의 30%를 Van der Host에게 내주는 대가로 오리올스의 Ned Hanlon 감독과 핵심 선수들을 받았왔다. 1899년, 1900년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이때 합류한 Willie Keeler, Hughie Jennings, Joe Kelley, Jay Hughes, Doc McJames 덕이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이들이 은퇴한후 40년동안 리그 우승을 두 번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침체기를 보냈다.

다저스가 명문팀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 것은 1938년 Larry MacPhail이 부회장에 취임하면서이다. MacPhail은 짧은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전력강화에 매진함은 물론 다저스를 재정적으로 튼튼하고 인기있는 구단으로 만들었다. MacPhail의 뒤를 이은 Branch Rickey)는 '황금시대'의 막을 연 주인공이었다. 최초의 팜 시스템 개발자로도 유명한 Rickey는 1947년 인종의 벽을 허물었고, 온화한 Burt Shotton을 감독에 임명했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정확히 10년동안 다저스는 리그 우승 6회를 기록하면서 내셔널리그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다. 가장 나빴던 해의 성적이 3위.
Jackie Robinson(2루수)은 Pee Wee Reese와 함께 최강의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으며, 1948년에는 전설적인 명포수 Roy Campanella가 합세했다. 1949년에는 외야수 Duke Snider가 주전으로 도약, Gil Hodges-Campanella의 파워라인에 무게를 더했다. 마운드의 주인공은 Don Newcombe이었다. 1949년 신인으로서 팀내 최다승인 17승을 거두며 혜성처럼 등장한 Newcombe은 부상에 허덕였던 1954년을 제외하면, 이 기간동안 매년 평균 20승 이상을 올렸다.
황금시대의 최절정은 1953년이었다. 이때 거둔 105승은 아직도 다저스의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특히 타선이 돋보여 다저스는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득점, 홈런, 총루타, 도루 등 공격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저스는 6번 도전했던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만 무려 5번이나 고배를 마시며 아쉬움을 남겼다. 다저스의 복수는 1955년에 이루어졌다. 첫 두 경기에서 2연패를 당하며 악몽을 되풀이하는 듯 했던 다저스는 3, 7차전에서 각각 2실점 완투승, 완봉승을 따낸 Johnny Podres의 대활약으로 극적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Podres는 처음 제정된 월드시리즈 MVP의 영광도 안았다.
양키스의 Don Larsen에게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의 수모를 당한 1956년, 구단주 Walter O'Malley는 '팀을 로스엔젤리스로 옮기겠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발표했다. O'Malley의 폭탄선언과 함께 다저스의 브루클린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로스엔젤리스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출발은 그리 좋지 못했다. 세번이나 MVP를 수상했던 포수 Campanella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으며, Jackie Robinson과 함께 Pee Wee Reese의 콤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담한 Ebbets Fields에 익숙해 있던 다저스 타자들에게 Memorial Coliseum(84년 올림픽 주경기장)은 허허벌판으로 느껴졌다. 다저스는 로스엔젤리스에 둥지를 튼 1958년, 14년만에 리그 7위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다저스는 이내 새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타선에서는 Maury Wills가 나타나 그라운드를 온통 휘젓고 다녔으며, Don Drysdale과 Sandy Koufax의 좌우듀오는 투수왕국의 새역사를 열었다. 1962년은 다저스 역사상 최고의 해로 기록될 뻔 했다. 오늘날의 다저스타디움이 개장했으며, Wills는 47년만에 시즌최다도루기록(104개)을 경신하면서 MVP를 수상했다. Drysdale과 Koufax는 사이영상과 방어율 1위를 나눠가졌으며, '최초의 흑인선수' Robinson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하지만 '숙적' 샌프란시스코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 자이언츠는 무서운 뒷심으로 시즌내내 선두를 달리던 다저스를 동률 1위로 끌어내렸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따냈다. 1963년은 Koufax를 위한 해였다. Koufax는 다승(25) 방어율(1.88) 탈삼진(306)의 3관왕을 차지하며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거머줬다. Koufax는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두번의 완투승을 따내며 월드시리즈 MVP까지 석권했다. 이듬해 19승으로 주춤했던(?) Koufax는 1965년과 1966년 각각 26승과 27승을 거뒀지만, 좌타자용으로 개발한 사이드암 커브가 화근이 되어 아까운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가장 화려했던 4년'동안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97승27패 1228탈삼진 방어율 1.86 사이영상 3회, MVP 1회, 월드시리즈 MVP 2회 수상.
1965년 다저스는 9월초까지 자이언츠에 뒤져있었으나, 막판 13연승으로 극적인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962년의 복수에 성공했다. 미네소타 트윈스와 맞붙은 월드시리즈에서도 Koufax의 7차전 완봉승으로 두번째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가져왔다. 이듬해 다저스는 다시 내셔널리그를 제패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4연패로 물러섰다.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극심한 팔꿈치 통증을 느꼈던 Koufax는 2차전 6이닝 4실점(1자책점)으로 마지막 무대를 패전으로 장식했다. Koufax의 은퇴 이후 다저스는 8위, 7위, 4위에 머무르며 화려했던 60년대를 마감했다.
Peter O'Malley 체체로 막을 연 70년대, Don Sutton이 이끈 다저스의 마운드는 신시내티 '빅 레드 머신'과의 일전을 남겨두고 있었다. 70년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그야말로 신시내티와 다저스의 격전장이었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의 10시즌 동안 둘이서 지구우승을 나눠가진 것만 아홉번(신시내티 6회, 다저스 3회). 그중 일곱번은 1,2위를 나눠가졌다.
두 팀의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빅 레드 머신'으로 대표됐던 신시내티가 Johnny Bench, Tony Perez, Joe Morgan, Pete Rose, George Foster, Ken Griffey의 기관총 타선을 내세웠다면, 다저스는 Don Sutton, Claude Osteen, Andy Messersmith, Burt Hooton, Tommy John, Mike Marshall 의 마운드에 승부를 걸었다.
물론 70년대 내셔널리그의 최강자는 신시내티였지만, 그들을 가장 괴롭힌 상대가 다저스였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다저스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최고의 내야진이었다. Steve Garvey(1루수)-Davey Lopes(2루수)-Bill Russell(유격수)-Ron Cey(3루수)로 구성됐던 다저스의 내야는 메이저리그 최강이자 최장(最長)의 내야진이었다. 1973년에 구축된 이 멤버는 무려 1981년까지 이어졌다.
신시내티에 번번히 무릎을 꿇었던 다저스는 1974년 102승으로 신시내티를 4경기 차로 눌렀다. Sutton과 Messersmith가 39승을 합작했고, Jimmy Wynn이 32홈런을 날렸으며, Marshall은 마무리투수로서는 경의적인 106경기에 출장, 208이닝을 던지며 구원투수 최초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다저스는 리그 챔피언십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격파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게 5경기만에 무너졌다.
Tom Larsoda가 감독에 취임한 1977년과 이듬해인 1978년, 다저스는 2년연속 신시내티를 2위로 밀어내고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1978시즌이 끝나자 신시내티는 우승실패의 책임을 물어 Sparky Anderson 감독을 해임했다. Anderson의 해임으로 시작된 '빅 레드 머신'의 해체는 다저스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낼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를 'Mr. October' Reggie Jackson이 이끈 뉴욕 양키스에 막혀 모두 놓치고 말았다.
1981년 다저스에는 '공포의 신인' Fernando Valenzuela가 등장했다. Valenzuela는 에이스 Jerry Reuss 대신 등판한 개막전에서 2-0 완봉승을 거뒀고, 결국 그해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석권하며 '페르난도마니아'를 불러왔다. 파업으로 시즌이 단축되며 승률 상위 4개팀이 맞붙었던 리그 챔피언십에서 다저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제압하고 월드시리즈에 나섰다. 상대는 상대전적 1승 8패의 치욕을 안겨준 뉴욕 양키스.

다저스는 Reuss와 Hooton후튼이 나선 1, 2차전을 모두 패하며 역사를 되풀이하는 듯 했지만, '81년의 다저스'는 달랐다. 3, 4, 5차전의 홈경기를 모두 1점차로 잡아내며 전세를 역전한 다저스는 6차전에서 외야수 Pedro Guerrero의 방망이가 폭발하며 사상 5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47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 5회, 리그 우승 14회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의 '영원한 강호'로 군림했던 다저스는 1981년을 기점으로 '영원한'이란 꼬리표를 떼어냈다. 1983년과 1985년에 지구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덜미를 잡혔으며, 1986년과 1987년에 올린 .451의 승률은 20년만에 나온 가장 나쁜 기록이었다.
Orel Hershiser가 진정한 '불독'의 힘을 보여준 1988년, 다저스는 다시 지구 1위로 올라섰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데려온 외야수 Kirk Gibson은 28홈런으로 공격을 주도했으며, Hershiser는 선배 Drysdale이 가지고 있던 연속이닝무실점기록을 '59'로 늘렸다. 하지만,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점치는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허약한 공격력으로 David Cone-Dwight Gooden-Ron Darling으로 이어지는 메츠의 삼각편대를 뚫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월드시리즈에서 진출하면 104승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대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다저스에는 1988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Hershiser가 있었다. 비록 Hershiser는 팀타선의 불발로 챔피언십 1차전과 4차전에서 모두 패전의 멍에를 안았지만, 7차전의 완봉승으로 다저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오클랜드와 격돌한 월드시리즈. 그러나 Jose Canseco와 Mark McGwire의 'Bash Brothers'도 Hershiser앞에서는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았다.
Hershiser는 2차전의 완봉승, 최종전인 4차전의 2실점 완투승으로 챔피언십 시리즈 MVP, 월드시리즈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부상병' Kirk Gibson은 1차전 9회말 대타로 출장, Dennis Eckersley로부터 극적인 대타홈런을 뽑아냄으로써, 기선제압의 일등공신이 됐다. 극적인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다저스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1991년 Darryl Strawberry와 Brett Butler의 영입으로 잠시 활기를 되찾는듯 했지만, 1992년에는 99패를 당하며 그 해 메이저리그 최악의 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저스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것은 40년전 Branck Rickey가 다져놓은 '신인농장'이었다. 1992년에는 Eric Karros가 나타나 Eddie Murray로부터 1루를 물려받았으며, 1993년에는 Mikie Piazza가 신인포수 홈런기록을 35개로 늘렸다. 1994년에는 Raul Mondesi가 강견을 자랑하며 메이저리그 신인 어시스트기록(16개)을 세웠다. 1995년에는 '토네이도 열풍'이 불었다. 일본야구 퍼시픽리그 다승왕 출신인 Nomo Hideo는 전매특허인 포크볼을 내세워 236개의 탈삼진을 기록, 새로운 '닥터K'로 부상했다. 1996년 Todd Hollansworth의 신인왕 수상으로 다저스는 신인왕 제도가 도입된 1947년 이후 최초의 5년연속 신인왕 배출이라는 뿌듯한 기록을 세웠다.
파업으로 중단됐던 리그가 재개된 1995년, 다저스는 홈런군단 콜로라도 로키스를 꺾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지만, 처음으로 치뤄진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신시내티에게 3연패로 물러났다. 1996년 7월 토미 라소다는 심장이상으로 쓰러지며, 20시즌 동안의 감독생활을 마감했다. Bill Russell 감독대행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한 다저스는 와일드카드를 획득했지만, 다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게 3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1998년 3월19일 충격적인 뉴스가 발표됐다. 구단주 Peter O'Malley가 더 이상 구단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며 다저스를 FOX의 루퍼트 머독에게 넘긴 것이다. 48년간 이어졌던 오말리家의 지배는 그렇게 끝이 났다. CNN 테드 터너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이기기 위해 야구판에 끼어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던 머독은 전폭적인 투자를 약속했지만, 그의 어색한 돈에 다저스는 체하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팜을 중시하는 팀에게 주어진 백지수표는 급히 먹은 밥이었던 셈이다.

시즌 중반 다저스는 '프랜차이스 플레이어' Piazza와 3루수 Todd Zeile토드 질을 플로리다 말린스로 보내고 Gary Sheffield, Bobby Bonilla, Jim Eisenreich,Charles Johnson을 받아오는 '블럭버스터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하지만 충격요법의 전혀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성적은 더 떨어지며 지구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9시즌을 앞두고 다저스는 사상 최초의 억대계약으로 Kevin Brown을 영입하고, 새사령탑으로 명장 Davey Johnson을 데려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000시즌에는 Shawn Green까지 보강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오히려 대표적인 '밑빠진 독'으로 전락했다.
2001시즌이 끝나면서 다저스에는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 다저스를 추락의 늪으로 내몰았던 Kevin Marlon 단장이 물러났으며, Jim Tracy 감독이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했다.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봉을 줄이기 시작, 박찬호 등 기존의 전력을 대폭 물갈이했다. 2002시즌 다저스는 일본에서 영입한 Ishii와 Sheffield를 내주고 데려온 Odalis Perez 등 투수진이 맹활약하며 예상 외의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방망이의 지원 없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957년 구단주 Walter O'Malley는 프랜차이즈를 로스엔젤리스로 옮기는 파격을 단행했다. 뉴욕의 거대시장을 버리고 서부지역으로 이동한 사건은 말 그대로 '사건'이었다. 1995년 Nomo Hideo의 신인왕 등극은 새 시대를 알리는 전조였다. Nomo와 박찬호의 대활약은 메이저리그의 눈을 아시아시장으로 돌리게 한 결정적인계기가 됐다. 이밖에 신시내티 레즈와 더불어 시작한 최초의 야간경기(1938년), 최초의 정규시즌 라디오 중계(1939년), 최초 연관중 3백만돌파(1978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다저스는 명실공히 '메이저리그의 개척자'였다.

다저스는 양키스(26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이상 9회)에 이은 월드시리즈 최다승 4위팀(6회). 그러나 다저스의 사감(史監)에는 쓰라린 기억도 많다. 총 12번의 월드시리즈 패배는 최다 기록이다. 다저스에게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는 '철천지 원수'가 있다. 뉴욕 시절부터 서로 으르렁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은 프랜차이즈 이전 후에도 각각 로스엔젤리스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여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1951년 당시 '황금시대'를 보내고 있던 다저스는 시즌 내내 선두를 유지하다 막판에 가서 자이언츠에게 덜미를 잡혔고, 결국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세계로 울려퍼진 한 방'을 맞았다. 1965년도 최종전에서 자이언츠에게 동률을 허용한 끝에,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끝내기 밀어내기로 패했다.

이로부터 28년 뒤인 1993년, 이번엔 다저스가 화끈한 고춧가루 세례를 퍼부었다.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시즌 최종전. 다저스는 이미 지구 4위가 확정되어 부담이 없는 상황이었고, 샌프란시스코는 승부의 향방에 따라 지구우승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다저스는 끝까지 스포츠정신을 발휘(?), 자이언츠의 포스트시즌행을 저지했다. American Association의 최강자, Brooklyn Bridegrooms가 내셔널리그로 활동무대를 옮긴 것은 1890년. 신입생의 전력은 막강했다. 다른 내셔널리그 팀들이 'Player's League'의 출범으로 인한 주전선수들의 유출을 막지 못한 반면, 다저스는 대부분의 선수들을 지켜냈기 때문. 그 해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111년 역사'를 개막하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후 부진했던 다저스는 1899년 Charles Ebbets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구단주 Harry Van der Host간의 밀약이 성사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Ebbets는 다저스 지분의 30%를 Van der Host에게 내주는 대가로 오리올스의 Ned Hanlon 감독과 핵심 선수들을 받았왔다. 1899년, 1900년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이때 합류한 Willie Keeler, Hughie Jennings, Joe Kelley, Jay Hughes, Doc McJames 덕이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이들이 은퇴한후 40년동안 리그 우승을 두 번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침체기를 보냈다.

다저스가 명문팀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 것은 1938년 Larry MacPhail이 부회장에 취임하면서이다. MacPhail은 짧은 5년의 재임기간 동안 전력강화에 매진함은 물론 다저스를 재정적으로 튼튼하고 인기있는 구단으로 만들었다. MacPhail의 뒤를 이은 Branch Rickey)는 '황금시대'의 막을 연 주인공이었다. 최초의 팜 시스템 개발자로도 유명한 Rickey는 1947년 인종의 벽을 허물었고, 온화한 Burt Shotton을 감독에 임명했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정확히 10년동안 다저스는 리그 우승 6회를 기록하면서 내셔널리그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다. 가장 나빴던 해의 성적이 3위.
Jackie Robinson(2루수)은 Pee Wee Reese와 함께 최강의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으며, 1948년에는 전설적인 명포수 Roy Campanella가 합세했다. 1949년에는 외야수 Duke Snider가 주전으로 도약, Gil Hodges-Campanella의 파워라인에 무게를 더했다. 마운드의 주인공은 Don Newcombe이었다. 1949년 신인으로서 팀내 최다승인 17승을 거두며 혜성처럼 등장한 Newcombe은 부상에 허덕였던 1954년을 제외하면, 이 기간동안 매년 평균 20승 이상을 올렸다.
황금시대의 최절정은 1953년이었다. 이때 거둔 105승은 아직도 다저스의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특히 타선이 돋보여 다저스는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득점, 홈런, 총루타, 도루 등 공격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저스는 6번 도전했던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만 무려 5번이나 고배를 마시며 아쉬움을 남겼다. 다저스의 복수는 1955년에 이루어졌다. 첫 두 경기에서 2연패를 당하며 악몽을 되풀이하는 듯 했던 다저스는 3, 7차전에서 각각 2실점 완투승, 완봉승을 따낸 Johnny Podres의 대활약으로 극적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Podres는 처음 제정된 월드시리즈 MVP의 영광도 안았다.
양키스의 Don Larsen에게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의 수모를 당한 1956년, 구단주 Walter O'Malley는 '팀을 로스엔젤리스로 옮기겠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발표했다. O'Malley의 폭탄선언과 함께 다저스의 브루클린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로스엔젤리스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출발은 그리 좋지 못했다. 세번이나 MVP를 수상했던 포수 Campanella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으며, Jackie Robinson과 함께 Pee Wee Reese의 콤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담한 Ebbets Fields에 익숙해 있던 다저스 타자들에게 Memorial Coliseum(84년 올림픽 주경기장)은 허허벌판으로 느껴졌다. 다저스는 로스엔젤리스에 둥지를 튼 1958년, 14년만에 리그 7위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하지만, 다저스는 이내 새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타선에서는 Maury Wills가 나타나 그라운드를 온통 휘젓고 다녔으며, Don Drysdale과 Sandy Koufax의 좌우듀오는 투수왕국의 새역사를 열었다. 1962년은 다저스 역사상 최고의 해로 기록될 뻔 했다. 오늘날의 다저스타디움이 개장했으며, Wills는 47년만에 시즌최다도루기록(104개)을 경신하면서 MVP를 수상했다. Drysdale과 Koufax는 사이영상과 방어율 1위를 나눠가졌으며, '최초의 흑인선수' Robinson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하지만 '숙적' 샌프란시스코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 자이언츠는 무서운 뒷심으로 시즌내내 선두를 달리던 다저스를 동률 1위로 끌어내렸고, 타이브레이크 끝에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따냈다. 1963년은 Koufax를 위한 해였다. Koufax는 다승(25) 방어율(1.88) 탈삼진(306)의 3관왕을 차지하며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거머줬다. Koufax는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두번의 완투승을 따내며 월드시리즈 MVP까지 석권했다. 이듬해 19승으로 주춤했던(?) Koufax는 1965년과 1966년 각각 26승과 27승을 거뒀지만, 좌타자용으로 개발한 사이드암 커브가 화근이 되어 아까운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가장 화려했던 4년'동안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97승27패 1228탈삼진 방어율 1.86 사이영상 3회, MVP 1회, 월드시리즈 MVP 2회 수상.
1965년 다저스는 9월초까지 자이언츠에 뒤져있었으나, 막판 13연승으로 극적인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962년의 복수에 성공했다. 미네소타 트윈스와 맞붙은 월드시리즈에서도 Koufax의 7차전 완봉승으로 두번째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가져왔다. 이듬해 다저스는 다시 내셔널리그를 제패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4연패로 물러섰다.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극심한 팔꿈치 통증을 느꼈던 Koufax는 2차전 6이닝 4실점(1자책점)으로 마지막 무대를 패전으로 장식했다. Koufax의 은퇴 이후 다저스는 8위, 7위, 4위에 머무르며 화려했던 60년대를 마감했다.
Peter O'Malley 체체로 막을 연 70년대, Don Sutton이 이끈 다저스의 마운드는 신시내티 '빅 레드 머신'과의 일전을 남겨두고 있었다. 70년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그야말로 신시내티와 다저스의 격전장이었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의 10시즌 동안 둘이서 지구우승을 나눠가진 것만 아홉번(신시내티 6회, 다저스 3회). 그중 일곱번은 1,2위를 나눠가졌다.
두 팀의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빅 레드 머신'으로 대표됐던 신시내티가 Johnny Bench, Tony Perez, Joe Morgan, Pete Rose, George Foster, Ken Griffey의 기관총 타선을 내세웠다면, 다저스는 Don Sutton, Claude Osteen, Andy Messersmith, Burt Hooton, Tommy John, Mike Marshall 의 마운드에 승부를 걸었다.
물론 70년대 내셔널리그의 최강자는 신시내티였지만, 그들을 가장 괴롭힌 상대가 다저스였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다저스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최고의 내야진이었다. Steve Garvey(1루수)-Davey Lopes(2루수)-Bill Russell(유격수)-Ron Cey(3루수)로 구성됐던 다저스의 내야는 메이저리그 최강이자 최장(最長)의 내야진이었다. 1973년에 구축된 이 멤버는 무려 1981년까지 이어졌다.
신시내티에 번번히 무릎을 꿇었던 다저스는 1974년 102승으로 신시내티를 4경기 차로 눌렀다. Sutton과 Messersmith가 39승을 합작했고, Jimmy Wynn이 32홈런을 날렸으며, Marshall은 마무리투수로서는 경의적인 106경기에 출장, 208이닝을 던지며 구원투수 최초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다저스는 리그 챔피언십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격파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게 5경기만에 무너졌다.
Tom Larsoda가 감독에 취임한 1977년과 이듬해인 1978년, 다저스는 2년연속 신시내티를 2위로 밀어내고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1978시즌이 끝나자 신시내티는 우승실패의 책임을 물어 Sparky Anderson 감독을 해임했다. Anderson의 해임으로 시작된 '빅 레드 머신'의 해체는 다저스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낼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를 'Mr. October' Reggie Jackson이 이끈 뉴욕 양키스에 막혀 모두 놓치고 말았다.
1981년 다저스에는 '공포의 신인' Fernando Valenzuela가 등장했다. Valenzuela는 에이스 Jerry Reuss 대신 등판한 개막전에서 2-0 완봉승을 거뒀고, 결국 그해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석권하며 '페르난도마니아'를 불러왔다. 파업으로 시즌이 단축되며 승률 상위 4개팀이 맞붙었던 리그 챔피언십에서 다저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제압하고 월드시리즈에 나섰다. 상대는 상대전적 1승 8패의 치욕을 안겨준 뉴욕 양키스.

다저스는 Reuss와 Hooton후튼이 나선 1, 2차전을 모두 패하며 역사를 되풀이하는 듯 했지만, '81년의 다저스'는 달랐다. 3, 4, 5차전의 홈경기를 모두 1점차로 잡아내며 전세를 역전한 다저스는 6차전에서 외야수 Pedro Guerrero의 방망이가 폭발하며 사상 5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47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 5회, 리그 우승 14회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의 '영원한 강호'로 군림했던 다저스는 1981년을 기점으로 '영원한'이란 꼬리표를 떼어냈다. 1983년과 1985년에 지구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덜미를 잡혔으며, 1986년과 1987년에 올린 .451의 승률은 20년만에 나온 가장 나쁜 기록이었다.
Orel Hershiser가 진정한 '불독'의 힘을 보여준 1988년, 다저스는 다시 지구 1위로 올라섰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데려온 외야수 Kirk Gibson은 28홈런으로 공격을 주도했으며, Hershiser는 선배 Drysdale이 가지고 있던 연속이닝무실점기록을 '59'로 늘렸다. 하지만,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점치는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허약한 공격력으로 David Cone-Dwight Gooden-Ron Darling으로 이어지는 메츠의 삼각편대를 뚫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월드시리즈에서 진출하면 104승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대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다저스에는 1988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Hershiser가 있었다. 비록 Hershiser는 팀타선의 불발로 챔피언십 1차전과 4차전에서 모두 패전의 멍에를 안았지만, 7차전의 완봉승으로 다저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오클랜드와 격돌한 월드시리즈. 그러나 Jose Canseco와 Mark McGwire의 'Bash Brothers'도 Hershiser앞에서는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았다.
Hershiser는 2차전의 완봉승, 최종전인 4차전의 2실점 완투승으로 챔피언십 시리즈 MVP, 월드시리즈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부상병' Kirk Gibson은 1차전 9회말 대타로 출장, Dennis Eckersley로부터 극적인 대타홈런을 뽑아냄으로써, 기선제압의 일등공신이 됐다. 극적인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다저스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1991년 Darryl Strawberry와 Brett Butler의 영입으로 잠시 활기를 되찾는듯 했지만, 1992년에는 99패를 당하며 그 해 메이저리그 최악의 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저스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것은 40년전 Branck Rickey가 다져놓은 '신인농장'이었다. 1992년에는 Eric Karros가 나타나 Eddie Murray로부터 1루를 물려받았으며, 1993년에는 Mikie Piazza가 신인포수 홈런기록을 35개로 늘렸다. 1994년에는 Raul Mondesi가 강견을 자랑하며 메이저리그 신인 어시스트기록(16개)을 세웠다. 1995년에는 '토네이도 열풍'이 불었다. 일본야구 퍼시픽리그 다승왕 출신인 Nomo Hideo는 전매특허인 포크볼을 내세워 236개의 탈삼진을 기록, 새로운 '닥터K'로 부상했다. 1996년 Todd Hollansworth의 신인왕 수상으로 다저스는 신인왕 제도가 도입된 1947년 이후 최초의 5년연속 신인왕 배출이라는 뿌듯한 기록을 세웠다.
파업으로 중단됐던 리그가 재개된 1995년, 다저스는 홈런군단 콜로라도 로키스를 꺾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지만, 처음으로 치뤄진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신시내티에게 3연패로 물러났다. 1996년 7월 토미 라소다는 심장이상으로 쓰러지며, 20시즌 동안의 감독생활을 마감했다. Bill Russell 감독대행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한 다저스는 와일드카드를 획득했지만, 다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게 3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1998년 3월19일 충격적인 뉴스가 발표됐다. 구단주 Peter O'Malley가 더 이상 구단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며 다저스를 FOX의 루퍼트 머독에게 넘긴 것이다. 48년간 이어졌던 오말리家의 지배는 그렇게 끝이 났다. CNN 테드 터너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이기기 위해 야구판에 끼어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던 머독은 전폭적인 투자를 약속했지만, 그의 어색한 돈에 다저스는 체하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팜을 중시하는 팀에게 주어진 백지수표는 급히 먹은 밥이었던 셈이다.

시즌 중반 다저스는 '프랜차이스 플레이어' Piazza와 3루수 Todd Zeile토드 질을 플로리다 말린스로 보내고 Gary Sheffield, Bobby Bonilla, Jim Eisenreich,Charles Johnson을 받아오는 '블럭버스터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하지만 충격요법의 전혀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성적은 더 떨어지며 지구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9시즌을 앞두고 다저스는 사상 최초의 억대계약으로 Kevin Brown을 영입하고, 새사령탑으로 명장 Davey Johnson을 데려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000시즌에는 Shawn Green까지 보강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오히려 대표적인 '밑빠진 독'으로 전락했다.
2001시즌이 끝나면서 다저스에는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 다저스를 추락의 늪으로 내몰았던 Kevin Marlon 단장이 물러났으며, Jim Tracy 감독이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했다.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봉을 줄이기 시작, 박찬호 등 기존의 전력을 대폭 물갈이했다. 2002시즌 다저스는 일본에서 영입한 Ishii와 Sheffield를 내주고 데려온 Odalis Perez 등 투수진이 맹활약하며 예상 외의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방망이의 지원 없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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